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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베네치아 다 산 것 같은 이 기분 세상의 끝, 베네치아 어떻게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 수 있을까. 사진으로 많이 봐 서 짐작은 했지만 직접 본 베네치아는 환상의 극치였다. 이 탈리아라는 수식을 붙이기가 망설여질 정도로 독보적인 베 네치아는 완벽하게 아름다운데 생명의 기미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건물이 물에 떠 있고, 그 사이를 미로같이 좁 은 운하가 연결하고 있다. 집집마다 작은 보트가 있고, 커다 란 짐을 실은 보트가 오가는 것으로 보아 보트가 중요한 생 활수단임이 분명한데도 천천히 미끄러지는 곤돌라는 산 채 로 탄 꽃상여같이 아득했다. 궁전인지 성당인지 둥근 지붕 의 아름다운 건물이 천연덕스럽게 바다에 떠 있는 장면은 영화 처럼 저 끝자락이 도르르 말려 있을 것 같 을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세상의 끝, 판타지의 끝, 퇴폐미의 완.. 2025. 3. 12.
튀르키예 페티예 지중해라는 이름값으로 충분해 천국은 이런 모양이 아닐까, 튀르키예 페티에 2012년 12월 처음 가본 튀르키예 카파도키아는 그저 그랬 다. 사진으로 볼 때는 기괴하고 역사성도 엄청나서 기대했 는데 정작 눈앞에 펼쳐지니 밋밋했다. 딱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수천만 년에 걸친 지각 변동으로 산맥이 융기하고 용암이 쌓이며 생긴 원추형 기둥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간 초대 기독교 신자들이 파 놓은 수도원과 교회가 1000개라니, 그 어마어마한 의미가 사무 치지 않은 것은 내가 신자가 아니기 때문일까. 일단 너무 많고 너무 비슷비슷해서 첫눈에 으악! 하고는 그만이었다.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쓰다듬고, 내 발로 걸으면서도 시종 “CG 같아!”라는 말이 떠나질 않았다. 파묵칼레는 그보다 훨씬 나았다. 다량의 .. 2025. 3. 12.
헝가리에는 바다가 없는 대신 ‘발라톤’이 있다 헝가리에는 바다가 없는 대신 ‘발라톤’이 있다 헝가리에는 바다가 없다. 대신 바다만큼 큰 호수 발라톤이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이면 발라톤이 보 이기 시작하고, 여기서부터 호수를 따라 기찻길이 죽 이어 진다. ‘씨오포크’가 제일 큰 마을인데 우리는 ‘자마르디’라 는 마을로 갔다. Zamardi! 나는 처음부터 이 이름이 좋았다. 입에 착 붙는 것이 꼭 아는 동네 같았다. 광활한 해바라기밭과 황금색 벌 판을 달릴 때부터 기분이 좋더니, 간이역처럼 조촐한 역사 잔치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기차역에서 물가까지 직선거리로는 5분이지만, 호수를 따라 길게 타운이 조성되어 있다. 커다란 호텔은 한 곳이고 아기자기하게 예쁜 민박이 많다. 우리 것보다 조금 진하고 길쭉한 능소화가 .. 2025. 3. 12.
크루즈 유토피아일지도 놓여나면 무엇을 할까 1. 크루즈, 제일 싼 선실 한 번 타봤을 뿐이지만 사람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유럽여행’은 절대 빠지지 않을 것이다. 무슨 무슨 설문조사에서 몇 번 그런 결 과를 보기도 했고, 내 주변 사람들이 그러했고, 나도 그랬으 니까. 나는 미국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지만 유럽은 꼭 가보 고 싶었다. 유럽에서도 이탈리아에 가장 큰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막상 가본 이탈리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 억을 다 모아도 베네치아 하나를 당할 수가 없다. 베네치아는 어찌나 환상적이고 독보적인지 꼭 독립된 나라 같았다. 베네치아의 자극이 너무 심하고 미로처럼 얽힌 운하가 갑갑해서 산마르코광장으로 나갔을 때였다. 성당과 두칼레궁전, 오래된 카페와 살롱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홀’처럼 보여,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 2025. 3. 12.
튀르키예 시간의 단위가 천 년 1. 단 한 곳만 여행할 수 있다면, 튀르키예 만약에 지구상에서 단 한 곳만 여행이 가능하다면 어디를 갈 것인가? 그런 질문에 튀르키예(옛 터키)라고 대답한 구절을 어느 책에서 보았다. 저자는 잊어버렸지만 그 대답은 가 슴에 들어와 박혀서 꼭 품고 있다가 드디어 갔다. 튀르키예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댕댕댕 트램이 지나가는, 신비의 도시 이스탄불이 아니어도 볼 것이 무궁무진했다. 그때는 튀르키예에 세 번째 갔을 때였다.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차낙칼레 바로 아래 있는 아소스(Assos)의 아테나 신전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고대도시를 만든 사람들이 풍수지리 라도 본 것일까. 평범한 붉은 산에서 좋은 기운이 뻗친다. 길에도 표정이 있어서 북동부처럼 산세가 험하지 않고, 구 릉에 가까운 낮은 산길을 가는데도.. 2025. 3. 12.
독일에서는 맥주가 술이 아니라는 소문 독일에서는 맥주가 술이 아니라는 소문   독일에서는 맥주가 술이 아니래, 맥주를 물처럼 마신다는 군….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소문은 사실이었다. 오전 11시, 오스트리아와 접한 국경의 작은 마을 베르히테스가덴 레스 토랑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들에 게는 안주 개념이 없는 듯 식사에 곁들이기도 하지만 대부 분 맥주잔만 앞에 놓고 있다. 하도 재미있어서 세어보니 하 나둘 천천히 모여든 할아버지 그룹이 6명, 중년 여성 2명, 제각기 따로 앉은 남녀 3명이 단 한 명도 빼지 않고 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나도 편하게 맥주를 주문했다. 우리에겐 낮술이 불량기의 단서로 여겨지지만 여기서는 당 연한 일!   마트에서 맥주 한 병 사려고 둘러보니 맥주가 없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저쪽.. 2025. 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