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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시간의 단위가 천 년

by essay6653 2025. 3. 12.

 

시간의 단위가 천 년 튀르키예

 

1. 단 한 곳만 여행할 수 있다면, 튀르키예

 

만약에 지구상에서 단 한 곳만 여행이 가능하다면 어디를 갈 것인가? 그런 질문에 튀르키예(옛 터키)라고 대답한 구절을 어느 책에서 보았다. 저자는 잊어버렸지만 그 대답은 가 슴에 들어와 박혀서 꼭 품고 있다가 드디어 갔다. 튀르키예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댕댕댕 트램이 지나가는, 신비의 도시 이스탄불이 아니어도 볼 것이 무궁무진했다. 그때는 튀르키예에 세 번째 갔을 때였다.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차낙칼레 바로 아래 있는 아소스(Assos)의 아테나 신전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고대도시를 만든 사람들이 풍수지리 라도 본 것일까. 평범한 붉은 산에서 좋은 기운이 뻗친다. 길에도 표정이 있어서 북동부처럼 산세가 험하지 않고, 구 릉에 가까운 낮은 산길을 가는데도 이상하게 경건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수형이 완벽하게 둥글어 몽글몽글 초록색 사탕을 꽂아놓은 듯한 나무가 잘 어울려 탄성을 지른다. 앙카라에서 여기 오는 데 1박 2일이 걸렸다. 환승지인 ‘에드레밋’까지 가는 데 6시간 반 버스를 탔고, 한 시간 기 다려서 다시 ‘아이바즉’ 가는 미니버스를 탔다. 아이바즉에 서 하루를 묵고 20여 분 달려 아소스로 향하는데 모든 길의 풍경이 감격스러웠다. 앙카라에서 에드레밋까지 오는 길은 대평원인데, 바싹 마른 옥수숫대가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이 장관이다. 동북부부터 죽 이어지던 황폐한 산하가 끝나고 경작지로 들어선 것이다. 물론 황폐한 곳에도 멋은 있었다. 누런 바위 같은 산들은 거대한 호수를 끼고도 나무 한 그루 키우지 못했다. 대신 제 황폐한 모습을 물속에 비추어 천하의 절경을 보여주었다. 그 러던 것이 앙카라에 이르러 넓은 경작지가 되었고, 부르사 에 이르러 풍성한 숲이 된 것이다. 왜 부르사를 일컬어 ‘예 쉴 부르사(푸른 부르사)’라고 하는지를 내 눈으로 확인하는 마 음이 벅찼다. 사이프러스도 부르사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아소스는 아담한 언덕이었다. 아소스라는 이름에서는 아 우라가 풍기지만 기둥만 몇 개 남은 신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무너진 성곽에도 위엄이 있었다. 딸과 나는 한참 동안 평평한 바위에 앉아 있었다. 오른쪽을 보아도 왼쪽을 보아도 부드럽게 휘어지는 해안선이 일품이고, 정면에는 기 다란 섬이 있었다.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이라 했다. 이 섬의 이름을 따서 레즈비언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그 섬이다. BC 540년에 지어졌다는 아테나 신전은 도리아 방식으로 지어진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도리아라고 하면 파르테논과 같은 방식이라, 신전 터에 만들어놓은 모 형이 파르테논과 흡사해 보인다. 이곳에서 첫 번째로 출토된 유물은 루브르박물관에, 두 번째로 출토된 유물은 보스 톤박물관에 있다니(다행히 이스탄불에도 있고), 강대국의 유물 각축전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2. 고대 유적지에서는 시간의 단위가 천 년

 

내려다보면 주 도로인 아케이드 길이 보이고 커다란 문 에 이르기 전 석관이 굴러다닌다. 네모반듯하고 커다란 돌 이 산적해 있으나 복원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듯 방치되어 있다. 에페소나 파묵칼레의 히에라폴리스에 비하면 아담한 규모지만 우리 말고는 여행자가 두 팀 있을 뿐 한적해서 고 대도시 하나를 독차지하고 앉은 기분이 뿌듯하다. 유적지에 오면 불현듯 ‘시간의 단위가 천 년을 넘고’, 나 는 먼지처럼 작아진다. 영원토록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 나라고 하는 존재의 특수성이 사라지고, 생명의 순환만 남는다. 시대와 나라와 부모를 내가 선택한 적 없으니 지극 히 우연으로 태어나서, 영겁의 세월에 비하면 찰나에 가까 운 내 삶을 살아내고, 다시 어딘가로 사라지는 먼지 같은 존 재. 먼지가 무슨 걱정거리를 안고 살랴, 한없이 쓸쓸한 초월에 한 걸음 다가선다. 예약해 놓은 호텔이 아소스 출입구 반대편이라 빙 돌아서 걷기로 한다. 역시 한적한 산길을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다. 그 이름도 아득한 에게해에 왔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아테나 신전 바로 아래 위치한 마을은 깜짝 놀랄 정도로 작았다. 인가는 거의 없고, 식당을 겸한 호텔 열 군데가 전부였다. 열 집이 해안 하나를 향유하고 있는데 아무리 주민 이 적기로 물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손가락 마디만 한 물고기가 떼를 지어 다니는 것이 어항처럼 들여다보인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작은 배를 몰고 나가 그물을 치는데 그렇게 가까운 곳에도 고기가 많은지 코앞에다 친다. 손자의 어깨가 딱 벌어졌는데도 일은 할아버지가 다 한다. 가만가 만 그물을 내리고, 조그만 닻 내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 진 자리에 U자 모양의 부표가 띄워져 있다. 호텔도 다 오래된 돌집이라 기품이 있다. 꼭꼭 숨어 있어 서 아는 사람만 찾아올 것 같은 작은 마을이 수채화처럼 맑 고 평화롭다. 동화 속 세계로 미끄러진 것 같은 어리둥절함 에 다시 복잡한 세상으로 나아가 살아갈 일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러나 우리는 아까 신전 언덕에서 보고 말았다. 레스보스 섬으로 향한 작은 고무보트를 뒤따라 온 배가 마이크로 위압적인 소리를 내가며 제지하여 다시 몰고 돌아오는 것을. 2015년 10월이었는데 난민 탈 출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나는 여행만 가면 날짜를 기억하지 못할 정 도로 들뜨는데, 그날은 그림 같은 마을과 난민 탈출의 현실이 뒤엉켜 미안하고 안타깝고 울적한 기분에서 헤어나기가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