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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페티예 지중해라는 이름값으로 충분해

by essay6653 2025. 3. 12.

지중해라는 이름값으로 충분해

 

천국은 이런 모양이 아닐까, 튀르키예 페티에

 

2012년 12월 처음 가본 튀르키예 카파도키아는 그저 그랬 다. 사진으로 볼 때는 기괴하고 역사성도 엄청나서 기대했 는데 정작 눈앞에 펼쳐지니 밋밋했다. 딱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수천만 년에 걸친 지각 변동으로 산맥이 융기하고 용암이 쌓이며 생긴 원추형 기둥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간 초대 기독교 신자들이 파 놓은 수도원과 교회가 1000개라니, 그 어마어마한 의미가 사무 치지 않은 것은 내가 신자가 아니기 때문일까. 일단 너무 많고 너무 비슷비슷해서 첫눈에 으악! 하고는 그만이었다.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쓰다듬고, 내 발로 걸으면서도 시종 “CG 같아!”라는 말이 떠나질 않았다. 파묵칼레는 그보다 훨씬 나았다. 다량의 석회질이 함유된 온천수가 흐르면서 이룬 거대한 목화성-올록볼록 볼륨을 자랑하는 하얀 성채가 볼만했거니와, 콸콸 쏟아지는 따 뜻한 물을 맨발로 헤치며 올라가는 바닥에 새겨진 기기묘묘 한 무늬가 일품이었다. 뽀얀 석회가 뿜어져 오르는 물에서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재미있었다. 게다가 목화성 뒤편으로 고대도시-히에라폴리스가 펼쳐져 있다. 나는 유적이 밀집된 에페스보다 이곳이 더 좋았다. 4세기경 로마의 도시였다고 하는데, 원형극장이며 대형 목 욕탕의 잔해만 남아 있어도, 너른 벌판에 뒹구는 대리석 기 둥만으로도 유장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1700년이라는 세월 속에 도시는 폐허가 되었어도, 하늘에는 여전 히 구름이 아름답고 땅에서는 노란 꽃이 반짝이고, 신랑 신 부는 웨딩 촬영을 한다.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것을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또 있을까. “유적! 내가 잠깐 올 려놓을게.” 당시 방영되던 드라마 <환상의 커플> 속 한예슬처럼 뻣뻣하고 도도한 톤으로 말하며 들고 다니던 과일 봉 지를 잘려나간 기둥에 올려놓는 딸 덕분에 웃는 지금, 오직 지금 이 순간밖에 없다는 것을 고대도시가 알려 준다. 인구 1만 5000명의 소도시 보드룸은 동화였다. 겨우 버 스 한 대가 지나갈 정도로 좁은 도로가 시작되는 순간, 댕댕 댕 동화 속 세계로 진입하는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시 내 도로가 모두 이렇게 좁다. 집들도 도로와 어울리는 모양으로, 반듯한 상자 모양의 하얀색 이층 집이라 소인국에 온 것 같다. 전통을 지키려는 합의가 있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 전통은 결코 외국인을 위한 관광 목적 은 아니었다. 호텔 주인이 외국인을 보고 놀라서 눈을 동그 랗게 뜨는 곳, 사진 찍어도 좋으냐는 몸짓에 그물을 손질하 던 어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곳.

 

 

지중해라는 이름값으로 충분해

 

그리고 페티에는 풍요다. 지중해라는 이름값을 하듯 새 파란 바닷가에는 하얀 요트가 빽빽하게 정박해 있고, 화요 장터는 풍성함 그 자체였다. 고급스러움과 소박함을 다 갖 춘 것이 좋았지만 어차피 요트는 내 관심사가 아니고, 유독 시장을 좋아하는 나에게 페티에 화요 장터는 압권이었다. 당시 인구 6만여 명의 중소도시에 누가 다 먹는다고 이 많은 청과물이 쏟아져 나왔는지, 실로 엄청난 양에 입이 딱 벌어졌다. 주먹만 한 감자가 1킬로그램에 500원, 베개만 한 바게트도 한 개에 500원, 세숫대야만 한 양배추 하나에 2000원, 각종 치즈도 1킬로그램에 만 원(2012년)…. 착한 물 가에 눌러앉아 살고 싶었다. 이렇게 농산물이 크고 싸니 나눠 먹기도 쉽겠지. 먹고살 걱정이 없는 곳이 천국 아니던가. 히잡을 쓰고 괴질레메(튀 르키예 빈대떡)를 부치는 아주머니들이며, 아까 오다가 길을 물 어본 인연으로 치즈를 사라고 붙잡는 청년이며 모두 낯이 익다. 그렇다. 유년의 외가 같고, 이십 대에 농활 갔던 강원 도의 푸근함을 닮았다. 어찌나 낯익고 정겨운지 꼭 추억 속으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았다. 튀르키예는 가는 곳마다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야말로 천의 얼굴이었다. 자연과 역사와 문화와 사람을 다 갖춘 여행지라고 할까. 그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페 티에다. 사람 마음은 비슷한지 영국인들이 선호하는 은퇴 후 거주지라고 했다. 관광 포인트도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 욜루데니즈 해변이 유명하다. 어마어마하게 큰 펜션타운을 거쳐 나타난 해변은 정작 아담했다. 철 지난 바닷가에 해가 기울기 시작한 때라 수영을 하거나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았는 데, 그 빈자리를 몽돌을 쓸고 가는 파도 소리가 채우고 있었다. 파도가 밀려와서는 차르르 차르르 소리를 내며 몽돌을 쓰다듬고 돌아섰다. 차르르 차르르 물결이 돌을 다듬어 완 벽한 달걀 모양을 만들어놓은 세월이 기가 막히고, 차르르 차르르 몽돌 사이로 빠져나가는 파도 소리가 듣기 좋아서 한참을 홀려 있었다. 차르르 차르르, 세상에 이보다 맑고 낭 랑한 소리가 또 있을까 싶은데 이쪽저쪽 봉우리에서 자꾸만 패러글라이더가 해변으로 내려앉는다. 순간 시간이 멈추고 마음이 저절로 풀어진다. 완벽한 평 화. 이렇게 완벽한 평화가 가능한데 눈곱만 한 일로 볶아대며 살았구나. 옹졸하지 말자, 받아들이자, 아니면 흘려버리 자…. 여행길의 사소한 마찰로 시끄럽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2015년에는 고대 리키아인의 유적이 남아 있대서 리키 아길(Lycian Way)이라 불리는 길을 걷기도 했다. 페티에에서 안 탈랴를 잇는 5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인데 우리는 겨우 6 킬로미터를 걸었지만,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과 하지 않은 오르내림 속에 울창한 소나무와 고즈넉한 야생화 사이로 고대인들의 집터가 불쑥불쑥 나오는 것이 정다웠다. 아직 물이 고여 있는 거대한 공동우물도 보았다. 그때 칼리스 해안에 묵었는데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할 정도로 구획이 잘된 고급 주택단지라 페티에가 더 좋아졌 다. 집 앞 도로가 4차선 도로는 될 만큼 뻥뻥 뚫리고 눈이 돌 아갈 만큼 예쁜 집이 즐비하다. 맘에 쏙 들었던 숙소가 일박에 3만 원 선이었던 기억. 숙소를 찾아 들어갈 때 한 정거장 미리 내리는 바람에 좀 걸어야 했다. 배낭에 캐리어만으로도 버거운데 화요 장터에 서 한 보따리 청과물을 산지라 짐이 너무 많았다. 마침내 옆에 아이를 걸리고 빈 유모차를 밀고 가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눈으로 사정하며 보따리를 유모차에 실었다. 여기서는 그래도 된다는 것을 알고 하는 일이다. 아주머니는 쾌히 내 짐을 밀고 가다가 방향이 갈리는 곳에 이르러 자기는 직진한다는 손짓을 한다. 이 넉넉함, 이 푸근함. 페티에는, 아니 튀르키예는 풍요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