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맥주가 술이 아니라는 소문
독일에서는 맥주가 술이 아니래, 맥주를 물처럼 마신다는 군….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소문은 사실이었다. 오전 11시, 오스트리아와 접한 국경의 작은 마을 베르히테스가덴 레스 토랑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들에 게는 안주 개념이 없는 듯 식사에 곁들이기도 하지만 대부 분 맥주잔만 앞에 놓고 있다. 하도 재미있어서 세어보니 하 나둘 천천히 모여든 할아버지 그룹이 6명, 중년 여성 2명, 제각기 따로 앉은 남녀 3명이 단 한 명도 빼지 않고 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나도 편하게 맥주를 주문했다. 우리에겐 낮술이 불량기의 단서로 여겨지지만 여기서는 당 연한 일! 마트에서 맥주 한 병 사려고 둘러보니 맥주가 없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저쪽으로 가라고 한다. 건너편에 맥주매장이 따로 있는데 규모가 원래의 마트 크기와 맞먹는다. 몇 가지 종류만 진열해 놓고 창고처럼 박스를 쌓아 놓아서 뭐가 뭔지 알아보기도 어려운데 어떤 부부가 세 박스나 가져간다. 맥주 종류는 너무 많고, 맥줏값은 너무 쌌다. 국내에서 익숙한 유명브랜드도 1유로 안팎이니 횡재한 기분이다. 물 에는 석회성분이 많아 커피포트 밑에 허옇게 남은 것을 보 면 정나미가 떨어진다. 자연스럽게 맥주 마시는 빈도가 늘 어나며 로컬 맥주를 맛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겠구나 싶던 차에 뒤셀도르프에서 정점을 찍었다. 뒤셀도르프! 이동을 위해 들른 곳이라 별다른 검색도 기 대도 없었는데…. 아침 7시에 기차역에 내려 구시가지에 있는 숙소를 찾아가는데 여기저기 술꾼들이 눈에 띈다. 길바 닥에는 깨진 술병이 뒹굴고, 노숙자도 심심치 않게 있고, 아 직도 여흥이 도도한 취객은 조심스럽게 들이대는 내 카메라를 향해 환호한다. 이런 풍경이 독일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 지와 너무 달라서 어리둥절한데, 오래된 술집들의 관록이 예사롭지 않아 눈이 휘둥그레진다. 알고 보니 이곳이 꽤 알 려진 곳이란다. 1킬로미터쯤 되려나, 곧게 뻗은 볼크스거리는 ‘유럽에서 가장 긴 카운터’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선술집과 바 가 집결된 곳이다. 일요일 저녁 술집과 거리를 가득 메운 인 파가 대단했다. 비교적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곳이든 시끄러워 운 클럽뮤직이 쿵쾅대는 곳이든 빈자리라곤 찾을 수 없고, 저마다 갈색 맥주를 앞에 두고 있는 장면이 볼만하다. 뒤셀도르프의 맥주 알트비어. 짙은 색 보리순으로 만든 다든가? 진한 색깔의 알트비어는 구수하니 내 입맛에도 맞았다. 타운이 들썩거릴 정도로 먹고 마시며 떠드는 사람들을 보니, 뮌헨의 옥토버페스트가 어떨지 안 봐도 상상이 간 다. 나도 갈색 맥주를 한잔 청해 분위기로 마시고 눈으로 마신다. 일요일 저녁의 해방구에 편입한 기분이다. 내친김에 맥주병을 들고 슬슬 걸으니 숨어서가 아니라 떳떳하게 마시고 싶은 청소년처럼 으쓱해진다. 볼크스거리를 지나 강가로 간다. 라인강변 계단에 앉은 사람들도 어김없이 맥주판이다. 맥주 한 병씩 손에 들고 나란히 걸어가는 남녀의 뒷모습이 왜 그리 편안해 보이던지! 숙소에서는 생햄에 멜론을 곁들여 마신다. 스페인에서는 ‘하몽’이라고 하고, 이탈리아에서는 ‘프로슈토’라고 하는 생햄을 멜론에 싸 먹으면 정말 맛이 좋다. 쫄깃하고 짭조름 한 하몽과 시원하고 심심한 멜론이 어우러져, 두 가지를 따 로 먹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상승한다. 도대체 이렇게 안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을 맨 처음 생각해 낸 사람이 누구인지 감탄할 정도로 참신하고 이국적인 맛에 반해서 맥 주에 곁들여 먹다 보니, 맥주 하면 하몽멜론이 생각난다. 천 하에 부러울 것 하나 없을 정도로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던 한 잔의 맥주와 하몽멜론. 여행이 왜 그렇게 좋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새로운 체험이 감 각을 확장시켜 주어 기억하고 즐길 것이 점점 늘어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