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헝가리에는 바다가 없는 대신 ‘발라톤’이 있다

by essay6653 2025. 3. 12.

바다 없는 헝가리 발라톤

 

헝가리에는 바다가 없는 대신 ‘발라톤’이 있다

 

헝가리에는 바다가 없다. 대신 바다만큼 큰 호수 발라톤이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이면 발라톤이 보 이기 시작하고, 여기서부터 호수를 따라 기찻길이 죽 이어 진다. ‘씨오포크’가 제일 큰 마을인데 우리는 ‘자마르디’라 는 마을로 갔다. Zamardi! 나는 처음부터 이 이름이 좋았다. 입에 착 붙는 것이 꼭 아는 동네 같았다. 광활한 해바라기밭과 황금색 벌 판을 달릴 때부터 기분이 좋더니, 간이역처럼 조촐한 역사 잔치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기차역에서 물가까지 직선거리로는 5분이지만, 호수를 따라 길게 타운이 조성되어 있다. 커다란 호텔은 한 곳이고 아기자기하게 예쁜 민박이 많다. 우리 것보다 조금 진하고 길쭉한 능소화가 한창이고, 토양에 잘 맞는지 다양한 무궁 화가 보여서 반갑다. 어떤 집의 독특함이 좋아 셔터를 누르 는데 마침 정원에 있던 아주머니가 나와 쏼라대며 반가워 죽는다. 그러고는 뭐라고 계속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데, 그거밖에 더 있으랴 싶어 코리아!라고 외치니, 코리아!라고 복창하며 반가워한다. 이래저래 자마르디에서 여행자의 마 음이 살살 녹는다. 그러나 발라톤의 비밀은 수심에 있다. 100미터를 나아가 도 성인의 허리밖에 차지 않는, 경이로울 정도로 얕은 수심! 아득하게 먼 곳에 서 있는 사람들이 신기해 보인다. 여기저 기 붙어 있는 다이빙 금지판을 보고 킬킬 웃는다. 수심 50센 티미터이니 다이빙하지 말 것! 어기면 휠체어를 타는 신세 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오른쪽으로는 아득한 수평선(도대체 이게 어떻게 호수야! 발 라톤의 크기는 육안으로 보이는 것의 세 배라고 한다), 왼쪽으로는 작은 섬의 붉은 지붕들, 저 멀리 막대기를 꽂아놓은 것처럼 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 숙소는 깔끔한 방갈로 형식으로 포 치에 테이블이 있어 맥주 한잔하기 좋고, 벽에 달린 화분이 생화라는 사실로도 점수를 올려줄 만하다(1박에 33유로). 조 화라면 무조건 싫은 나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생화를 쓰는 업주를 존경한다. 자마르디는 숙소에 짐을 풀고 산책에 나선 지 3분 만에 내 기분 좋은 예감을 충족시켜 주었다. 쿵작쿵작 음악 소리 가 나는 집을 들여다보다 개인 집인 것 같아 돌아서는데 주 인이 쫓아온다. 예술가들 작품을 전시 중인데 들어와도 된 다고 간곡히 청하기에 들어서니,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이 일일이 목례를 하고 눈을 맞추며 환대해준다. 럭셔리한 집 안에 전시된 미술작품들은 초보 수준이었으나 밴드까지 있 는 파티 분위기는 최고였다. 기념사진을 찍는데 익살스럽 게 벌러덩 눕지를 않나, 하나같이 로맨티스트인 티가 역력 하다. “여기는 전부 나 같은 사람만 모였네.” “그러게….” 여행길에 세심한 준비는 딸이 맡고, 나는 오직 즐기기만 하는지라 다소 민망하던 김에 한마디해본다. 흥겨운 재즈에 신명이 돋아 가볍게 몸을 흔들며 맛있게 몇 곡 듣고는, 촘촘하게 떠 있는 요트, 은은하게 남실거리는 수면을 보 노라니, 불현듯 물에 들어가고 싶어진다. 당최 운동과는 거리가 멀고 당연히 수영도 못하는 나로서는 좀처럼 없는 일이다. 이토록 얕은 수심이라니 가족 단위 휴양지로 최고겠다. 자연스럽게 물과 친해질 수 있고, 노 젓기부터 윈드서핑까 지 점차 난이도를 높여가며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요트 같은 것 없어도 된다. 15만 원짜리 고 무보트면 충분하다. 사고 싶어서 다 알아봤다. 아버지와 어 린 아들이 빠르게 노 젓는 모습을 보니 아이들이 다 큰 것 이 서운할 정도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돛을 자 빠뜨려 일으켜 세우느라 애를 쓰고 있어도 하나도 걱정되 지 않는다. 우리는 여행자 주제에 튜브를 사고 싶어 안달이 났다. 발로 젓는 오리배가 있지만 심심해 보였고, 튜브 대여점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물에 직접 닿고 싶다는 욕망을 해소해야 했다. 딸은 수영을 잘하는데도 침 대형 튜브에 로망이 있는 것 같았다. 곧바로 불가리아 가 는 저가항공을 타야 했기에 무게 따져 가며 한참 궁리하다 작은 침대형 튜브를 산다. 3000포린트(15000원). 이런 것을 보고 천혜, 하늘이 내린 것이라고 말해야 하 리라. 물속은 자갈 하나가 없는 모래사장이다. 물은 깨끗한 데 석회 성분이 많은지 우윳빛이라 말갛게 비치진 않아 두 려움이 확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내 익숙해졌다. 튜브에 앉 았다, 누웠다, 엎어졌다 할 수 있었고, 두 손으로 찰랑대며 노 젓는 시늉도 해보았다.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이 서운하던 차에 잠시지만 딸이 힘껏 밀어주었을 때의 속도감은 실로 낯선 짜릿함이었다. 내 힘으로 물살을 가르는 속도를 느끼고 싶었다. 여기서라 면 나도 카약이나 윈드서핑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하고 싶었다. 바다(사실은 호수지만)가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내 즐거움과 도전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 웠다. 이곳에서 3박만 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자마르디에는 미루나무가 도열한, 구획 잘 된 도로가 바 둑판처럼 펼쳐져 있어 자전거 타기에도 좋다. 매일 자전거 를 타고, 물놀이하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평화를 누릴 수 있 는 곳이다. 해질녘, 깔고 누웠던 매트를 도르르 말아 옆에 끼 거나 고무보트를 끌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서 평화가 느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