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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우준굘 여행지에서 볼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

by essay6653 2025. 3. 12.

튀르키예 우준굘

 

 

아는 사람이 이렇게 좋은 것, 튀르키예 우준굘

 

 

튀르키예 동부 트라브존에서 우준굘 가는 버스 기사 아저씨 의 인상이 참 좋다.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의 먼 친척쯤 되는 듯한 느낌인데 얼굴이 하회탈이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의 전 형적인 얼굴에 책임감이 아로새겨져 생활인 모드로 굳어진 상태. 숙소 앞까지 태워다 주어서 잘 도착했다. 놀랍게도 다 음날 타운을 산책하는데 그 기사가 어떤 식당 앞 노천 테이 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반갑게 웃으며 우리 도 그 식당에 앉고 보니 이 집이 딱 내 스타일이다. 조그만 괴질레메 전문점인데 주방이 두어 평, 노천 테이 블이 세 개, 작아도 너무 작으니까 오히려 정답다. 몸집을 키운 세련된 식당들 틈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동네 식당 분위기다.영어로 주문을 받는 아가씨가 워낙 발랄해서 대꾸만 해 줘도 분위기가 방방 뜬다. 아가씨는 독일에서 일하다가 휴 가를 받아 왔다고 하고, 이 집은 사촌네 집이고 버스 기사도 친척이라며 다정하게 포즈를 취해준다. 슬쩍 쳐다보니 주문 을 받은 다음에 반죽을 밀기 시작하는 것이 미더워서 주방 으로 들어가 본다. 하도 허물없이 구는 튀르키예 사람들에 게 반해 나도 절반은 튀르키예 사람같이 군다. 괴질레메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치즈·고기 야채 를 넣고 반으로 접어 부쳐 먹는 튀르키예식 빈대떡이다. 주 방에는 아가씨2가 있다. 어머니는 반죽을 밀고, 아가씨2는 고명을 뿌리고, 주문 받던 아가씨가 철판에서 굽는다. 바로 구워주니 엄청 맛있어 보이는 데다 주방이 깔끔해서 신뢰감 이 증폭된다. 아가씨1에게 어찌 그리 영어를 잘하느냐고 물으니 언니 가 영어를 더 잘하고 게다가 한류 마니아라고 한다. 그 말을 받아서 어떤 드라마를 제일 좋아하느냐고 아가씨2에게 물 으니 <시크릿 가든>이라는 대답이 돌아오고, 짐짓 “예쁘다” 라는 단어까지 발음해 보이는 목소리가 차분하니 지적이다. 아가씨2의 인상이 너무 좋아서 더 대화를 나누고 싶다. 마 침 주방에 있는 수염 난 아저씨에게 시선을 돌리니 누가 뭐 라고 하지도 않는데“I can’t speak English” 그런다. 거기다 대고 내가 “Problem yok”이라고 받아치니 좁은 주방이 웃음 소리로 가득 찬다. “욕(yok)”이라는 말이 튀르키예어로 “no” 라고 하는데 발음이 재미있어서 한번 쓰고 싶던 차에 제대 로 써먹어서 나도 기분이 좋다. 마침 괴질레메가 나와서 자 리에 앉으니 버스 기사 아저씨가 자기가 먹던 포도 접시를 슬쩍 밀어주고 간다. 고향에라도 온 양 마음이 풀어진다. 매콤한 치킨을 넣은 괴질레메는 최고였다. 반죽이 부드 러우면서도 불맛이 느껴지고 간도 꼭 맞았다. 나는 그만 이 집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언제고 이국의 도시에 장기 체 류를 하고 싶은데, 내 집처럼 편안한 단골식당의 로망을 아 가씨2가 떠올리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영어로 기본적인 소 통이 되고,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서로의 모국어를 가 르쳐줄 수 있다니 얼마나 환상적인가. 그 이전에 얼굴색이 창백한 아가씨2는 내게 상상을 부추 긴다. 영어 잘하고 한류에도 관심 있으니 시야는 넓은데 조 그만 고향마을에 갇혀 매일 밀가루 반죽만 오므리고 있다? 나는 그녀의 꿈과 좌절을 알고 싶었다. 그녀와 몇 마디 나눌 때 어머니가 조금은 염려스러운 낯빛을 짓던 것도 보았다. 어머니는 원장 수녀처럼 진중한 분위기인데 혹시라도 자기 딸에게 바람을 넣을까봐 걱정한 것은 아니었을지? 아아, 하루만 더 우준굘에 체류하는 일정이었어도 나는 다시 그 식당에 가서 그녀와 이야기를 이어갔을 것이다. 우 리는 다음 날 아침 9시에 버스를 타야 했다. 그러나 그 정도 의 소통만으로도 우준굘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으니…. 우준굘에는 커다란 호수 말고는 별달리 볼 것이 없다. 물 가의 ‘자미(이슬람 사원)’가 멋을 더해주지만 우리네 백운호 수 같고 그렇다. 그런데 사람이 무진장 많다. 숙박업소도 많 아서 호텔 예약 사이트인 B.com에 올라와 있는 것만 80개 다. 처음에는 좀 허탈할 정도였다. 다행히 숙소에서 바라보 는 전망이 좋아서 산봉우리에 피어나는 운무를 보는 것으로 서운함을 달래고 있었는데, 작은 괴질레메 집을 발견한 것 이다. 그 여파는 컸다.

 

 

여행지에서 볼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

 

친해지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 잠시나마 소리 높여 함께 웃었다는 사실이 우준굘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거다. 그날 오후 나는 심심하다고만 여겼던 우준굘을 관찰하기 시 작했다. 우선 차도르를 쓴 여자들이 엄청 많다. 이들은 밥을 먹을 때도 두건을 벗지 않는다. 두건 한쪽을 살포시 들고 음 식을 먹는다. 차도르 안에 공들여 멋을 부렸겠다는 짐작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발찌를 한 사람이 있었으며, 앞코가 뾰족하고 펄이 들어가 밤무대 가수가 신음직한 화려한 구두 를 신은 사람도 보았다. 차도르를 펄럭이며 자전거도 잘 타 고, 우리에게 대놓고 호기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괴질레메 를 먹고 있는데 앞에 세워진 차의 뒷좌석 유리에 새까만 머 리통(!) 세 개가 달라붙어 있는 바람에 실소했다. 중동 여성들의 눈이 워낙 크고 속눈썹이 긴지라 좁게 뚫 린 틈새로 고혹적인 눈매가 보인다. 그 좁은 틈새에 선글라 스를 낀 모습도 볼만하다. 한번은 차도르로 무장한 눈이 예 쁜 여성이 흰 바탕에 검은색 땡땡이가 그려진 우산을 활짝 펴서 허리께에 받치고 있는데 무슨 화보 같았다. 산 쪽으로 걸어가니 옥수숫대가 즐비한 밭이 우리네 농 촌과 똑같다. 고추며 호박은 그렇다고 쳐도 명아주에 비름 나물 같은 잡초성 나물이 똑같아서 신기하다. 세상에나, 까 마중도 있다! 어릴 때 외가에서 숨바꼭질하다가 울타리 밑 에 숨어서는, 술래인 주제에 몰래 따 먹던 그 까마중 말이 다. 조그맣지만 닥지닥지 열리고 새콤달콤해서 먹을 만하 다. 좀 더 가까운 중국과 일본에도 이런 잡초가 있는지 궁금 해진다. 화덕과 테이블을 몇 개 설치해 놓은 쉼터에서 동네 사 람들이 고기를 구워 먹으며 오라고 손짓한다. 배가 불러 서 가지 않는다. 산길로 들어서니 계곡물이 바람에 날려 물보라로 흩어지고 패러글라이더가 내려앉는다. 빽빽한 침엽수와 짙은 색의 나무집들은 가보지도 않은 북유럽을 연상시킨다. 운무가 가득한 산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산촌 에 겨울에 와도 좋겠다. 다음 날 아침 버스를 타니 예의 기사 아저씨가 운전석 이 아닌 손님석으로 올라탄다. 출근이라도 하나 보다. 손까 지 번쩍 흔들며 환하게 웃는 아저씨의 모습에서 ‘하회탈’ 이 벗겨지고 ‘아는 사람’이 보여주는 친근함이 묻어난다. 우리가 내릴 곳이 되어 앞문으로 내리며 기사에게 “Baggage!”라고 소리치니 그 아저씨가 “Baggage here” 하 고 대답하며 뒷문으로 내려 도와주는데 얼마나 친근한지 아저씨를 슬쩍 안으며 인사를 나눈다. 튀르키예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질 때 왜 그토록 안고 부비며 진한 인사를 하는 지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