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산골에서 현빈 드라마 보기
2018년 연말에 태국 제2의 도시이자 ‘예술가들의 도시’로 불리는 치앙마이로 여행 갔을 때 우리 모녀는 현빈이 나오 는 드라마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왕팬이었다. 배우로서의 기량과 열정에 물이 오른 현빈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처연함과 능글맞음과 치열함을 오가는 그의 표정은 보는 사 람을 빨려들게 만든다. 나와 다른 인간이 되어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점 에서 배우라는 직업은 흥미롭다. 연예인의 특성상 사생활은 축소되기 쉬운데 반대로 영화에서는 막강한 스토리와 인력 과 자본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럴 때 가상현실 이 더 현실 같지 않을까? 잠시나마 다중인격을 체험할 기회 가 있다는 점에서 나는 배우라는 직업에 흥미를 느끼곤 하 는데…. 어쨌든 나의 원픽인 현빈의 드라마를 태국 산골에서 본 다는 것이 간질간질하게 재미있다. 게다가 게임과 현실이 뒤섞인 스토리도 꽤 흡입력이 있다. 그동안 게임마니아를 볼 때마다 위화감을 느끼곤 했다. 내가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게임 같은 것으로 세상이 뒤덮인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뜬금 없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이 드라마는 바로 거기에서 시 작한다. ‘증강현실’이라고 한다던데 내가 있는 장소에서 무 기를 취하고 현실 위에 이미지를 더하는 방식이나, 레벨이 니 아이템같이 생소한 용어가 생각보다 재미있다. 죽은 인 물이라도 게임 캐릭터로서의 위상이 있으므로 끝없이 부활 하여 아무 때나 나타난다는 허무맹랑한 드라마에 이렇게 몰 입할 수 있다니! 나중에 CG로 그려 넣었지 연기할 때는 아 무런 무기도 (가끔은) 상대도 없이 ‘쌩쇼’를 한 배우들을 생각 하며 감탄하면서 본다. 치앙마이에서 한참 더 들어간 매홍쏜은 명상도시처럼 정갈했고, 사람들은 순하고 시간은 더디 흐르고, 살아남기 위 해 과도하게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되는 꿈결 같은 곳이라 대 한민국과 다른 세상에 도달한 기분이 들었다. 매홍쏜 주변에는 자연과 야시장밖에 없어서 우리는 한껏 늘어진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찌나 별일이 없는지 현빈 드라마가 제일 큰 이벤트라 알람으로 지정해놓고, 알람의 지시에 맞춰 핸드폰을 세팅하다가 실소한다. 화면은 작아졌 어도 재미는 더하다. 오래된 게스트하우스에서 담요를 둘둘 말아 높이를 맞춰 핸드폰으로 드라마에 집중하는 우리가, 대한민국과 다른 세상에서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처 럼 신기하다.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왜 그리 좋았던지, 서울에서 비행 기로 7시간쯤 되는 곳에서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며, 서울 에 있는 나를 멀리서 지켜보는 기분이 들 때 일상의 권태가 사라지고 기분이 고슬고슬 말려진다. 주거지와 여행지, 가 상현실을 넘나들며 몇 겹의 세상을 느낄 때 시간이 촘촘해 지고 나는 확장된다. 여행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마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