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고 내가 사라질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앙코르와트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에는 ‘The Kingdom of Combodia’ 라고 쓰인 시멘트 구조물이 달랑 세워져 있었다. 낡고 조악 하여 놀이동산만도 못한 구조물에 한 번 놀라고, 태국에서 일하기 위해 나무 손수레를 밀고 가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초라한 행색에 두 번 놀란다. 모든 것이 회색이었다. 나중에 앙코르 유적지의 엄청난 스케일과 위용에 감탄할 때마다 국 경이 떠올랐다. 12세기에 이만한 건축물을 건설할 정도로 부와 문명을 갖추었던 국가가 오늘날 왜 이렇게 되었는지 역사의 비밀을 알고 싶었다. 앙코르 유적지는 드넓은 열대의 평원에 세워진 사원군이 다. 거대한 돌탑과 내부 공간으로 이루어진 사원이 끝도 없 이 이어지는 바람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사원의 분포가 만 다라 모양이라고 하던가, 기술이 부족했던 시대에 이렇게 엄청난 건축이 가능했던 데는 절대권력이 필수적이었을 테 니 캄보디아는 ‘킹덤kingdom’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나라 임에 틀림없다. 앙코르와트는 사원 중 하나인데, 웅장하고 세련된 건축미가 뛰어나 앙코르 유적지의 대표 명사가 되어 버렸다. 2008년에 앙코르 유적지 관람비가 1일권이 20불, 3일권 이 40불, 일주일권이 60불이었으니 물가 대비 적은 금액이 아니다. 구걸에 나선 아이들이 얼마나 많고 집요한지 안타 깝기는 해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무력감을 느낄 때, 독 보적인 유적으로 벌어들이는 관광수입이 캄보디아에 오롯 이 돌아가기를 나는 빌었다. ‘무한대의 기술과 자본이 투입 된다고 해도 앙코르 유적을 복원하는 데 100년이 걸린다’는 자료를 보고 나니 앙코르와트 뒤에 다국적 관광재벌이 버티 고 있을 것만 같아서이다. “원 달라!” 캄보디아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당분간 “원 달라!”의 환 청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딜 가나 구걸에 나선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몇 번은 원 달러를 쥐여 주기도 하지만 너 무 많기도 하고, 나의 무심한 행동이 아이들의 구걸행각을 조장하는 것 같아 심란하다. 한번은 남매에게 원 달러를 준 뒤 무심히 사진을 찍는데 누나가 동생의 옷매무새를 고쳐주 어 놀란 적이 있다. 자기도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포즈를 취 해주었으니 이미 서비스 정신을 익힌 것이다. 거대한 수상촌 톤레삽 호수의 물빛은 진흙탕에 막걸리를 부은 듯 걸쭉하고 탁했다. 관광객을 태운 배마다 조금 큰 아 이들이 조수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애들이 호수에서 놀다가 잠수까지 할 때는 내가 숨이 참아졌다. 그 선상에도 “원 달 라!”를 외치는 아이들이 따라붙었다. 배 옆의 좁은 틈새로 눈이 마주쳤을 때도 “원 달라!”를 외치는데 그야말로 웃픈 마음이 되었다. 앙코르 유적지는 엄청났다. 오늘날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이 많은 돌이 다 어디서 왔으며, 이 거대한 돌탑을 쌓은 노동력이 얼마이며, 아마도 가장 힘없는 계층을 당근과 채찍으로 부렸을 권력은 또 얼마나 도저했을지 앙코르 왕조가 궁금해진다. 그중에서도 스케일 하면 ‘앙코르톰’이 최고인데 108개 의 커다란 석상이 양쪽으로 도열하고 있는 식이다. 앙코르 톰에는 ‘바욘’이나 ‘코끼리 테라스’처럼 볼거리도 많았다. ‘바욘’은 멀리서 보면 거대한 돌탑으로 보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돌탑마다 거대한 인면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앙코르톰 을 세운 주역 자야바르만 7세(재위 1181~1201)의 모습이다. ‘직계가 아닌 방계로서 왕이 된 그가, 귀족들을 견제하고 백 성의 신망을 얻고자 스스로 관세음보살이라 믿게 하고 왕권 을 강화한 생생한 흔적’이다.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똑같은 템플 마운틴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요새의 내부에 끝없이 중 첩되는 작은 공간도 있어서 12세기에 이만한 상상력과 심미 안이 가능했다는 것이 불가사의할 뿐이다. 나는 코끼리 테라스가 그중 좋았다. 앙코르 유적지 전부 가 감탄의 연속이지만 촘촘하게 도열한 코끼리가 300미터 에 달하는 테라스를 떠받치고 있는 코끼리 테라스에 이르면 숙연해질 정도로 감동에 빠지곤 했다. 어린아이가 그린 그 림처럼 단순한 코끼리가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보이는 것도 좋았다. ‘자야바르만 7세가 이곳에 앉아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무사들을 맞이했다’는데, 그의 정치력이 예술적인 상징성에까지 미친 덕분에 지금 내가 코끼리 테라스 앞에 서서 감탄하고 있다(이우상, 《앙코르와트의 모든 것》 참고).
인생사에 지칠 때는 앙코르와트에 가보시라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지로 유명한 ‘따프롬’에서는 사 원을 집어삼킬 듯 기괴한 나무들이 주인공이었다. 흡혈귀처 럼 유적을 칭칭 감은 벵골 보리수나무에 정령이 깃들어 있 을 것 같았다. 지나가는 가이드에게 커다란 나무의 수령을 물어보니 겨우 400년이란다. 열대지방이라 수령에 비해 빨 리 자란 것 같다. ‘반띠아이쓰레이’의 고즈넉하고 차분한 정취도 좋았는 데 다른 곳보다 정교하고 입체적인 조각상들은 유독 부식이 심해서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이 위태로웠다. 조금의 틈새 도 남기지 않고 아름다움과 기원을 새겨 넣은 천년 예술혼 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얼굴 한쪽과 무릎 아래가 뭉그 러져 형태를 알 수 없는데도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압살 라(무희, 미녀)가 가슴 철렁하게 아름답다. 유적들은 서둘러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 경을 나무 한 그루가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캄보디아 사 람들의 신산한 삶을 대변하듯 얄팍한 다리에 툭툭 튀어나온 핏줄처럼 심란한 나무. 내가 반띠아이쓰레이에서 좋았던 것 은 사라지는 것의 덧없음, 쓸쓸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문 득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뙤약볕 속의 정적과 함께. 어딜 가나 유적이 발길에 치였다. 돌무더기, 혹은 인류의 문화유산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방치되어 있었다. 돌이 썩 고 있었다. 쨍한 햇볕 아래 목이 뎅강 잘린 나가naga(뱀, 수호 신이라고 한다)와 발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붓다를 쳐다보다 보면 이대로 이 순간이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돌이 썩도록 무심히 흐르는 시간 앞에서 내게 허락된 80여 년의 시간 따 위는 그대로 바스라지고 말 흑백사진도 못 될 것 같았다. 그 런데도 석상들은 천 년을 빌고도 모자라, 아직도 손을 모으 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지만 그래도 정성을 다해 살 고 사라지라고 말하듯이. 앙코르와트의 영화는 구걸에 나선 아이들과 대비되며 극 적인 인상을 안겨주었다. 커도 너무 크니까 부식이 주는 충 격도 커서, 그 거대한 상상력과 심미안과 역사성에도 불구 하고 인생무상의 깊은 인상을 새겨주었다. 그러니 인생사에 지칠 때는 앙코르와트에 갈 일이다. 밀림에 사원으로 만다 라를 수놓은 권력도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가슴에 담을 때, 언제고 내 인생도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 당연하게 여 겨진다. 쨍한 햇볕 아래 무릎 꿇으면 내 위로 돌탑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환각이 오늘 내게 허락된 하루가 기적임을 알 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