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편해도 되는 건가, 치앙마이 숙소에서
낚시의 묘미가 랜덤에 있단다. 물속에서 어떤 물고기가 나 올지 모른다는 의외성? 낚시는 모르겠고 숙소여행의 재미 도 랜덤에 있다. 물론 검색을 하고 간다고 해도, 가령 수영 장이 있는 건 알고 가되 어떤 크기인지, 수영하고 싶은 마음 이 드는 환경인지 검색으로는 알 수 없는 ‘리얼’을 확인하 고, 만족과 실망의 미묘한 총합을 누리는 재미가 있다. 몇 번 말했듯이 딸은 검색의 달인이다. 검색 자체를 즐기 기에 대충 하고 마는 법이 없다. 흡족할 때까지 끝까지 추적 해서 골라놓으니 가성비가 좋을 수밖에. 너무 심혈을 기울 이기에 옆에서 보기 미안해서 그만 좀 하라고 하면 자기는 그게 편하단다. 취미활동하는 중이라니 할 말이 없다. 공들여 결정한 숙소인 만큼 자신의 예상이 맞았는지, 유일한 고 객인 내가 만족하는지에 촉을 세우는데, 성공률이 점점 높 아지고 있다. 딸에게는 가성비가 최우선이지만 마음에 드는 포인트가 하나는 있어야 만족하는 내 취향을 알기에 아슬아 슬한 타협선에서 고르고, 나는 나대로 딸의 수고를 감안하 여 수용 폭이 커지고 있어서 서로에게 맞추는 기술이 향상 된 것이다. 2018년 연말 태국 치앙마이에서는 그동안 쌓인 노하우 가 만개하여 다양한 숙소를 맘껏 누리며 만족도가 최고였 다. 17일간 이틀에 한 번꼴로 옮겨 다니며 총 아홉 곳에 머 물렀는데 치앙마이 네 곳, 빠이 세 곳, 매홍쏜 두 곳의 숙소 를 정리해보면, 표본치는 적지만 이맘때 치앙마이 부근 숙 소에 대한 실재감을 가질 수 있으리라. 가정집, 게스트하우 스, 방갈로, 호텔 등 다양한 형태에 묵었는데 하나같이 가격 대비 훌륭해서 우리나라의 미친 물가와 비교할 때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어울 리는 것을 즐기지 않고 조용히 풍경, 숙소, 음식을 누리는 편이라 숙소에 대한 만족감이 중요한데 치앙마이의 숙소는 사랑스러울 정도로 훌륭했다. 물가가 싸면 자유로워진다. 먹고살기 위해 매이는 시간 이 줄어들기 때문에 싼 물가는 자유와 동의어다. 여행을 가 면 우리나라의 물가가 비정상을 넘어 ‘살인적인’ 수준은 아 닐까 객관화해서 보게 된다. 매홍쏜 외곽의 하루 12불짜리 숙소(Crossroads)가 너무 훌 륭해서 장기 체류를 하고 싶었다. 오래된 건물이 평범한 듯 중후한데 두툼하고 짙은 색깔의 나무 바닥이 내 스타일이 다. 침구는 검소한데 그 위에 타월로 백조를 만들어놓은 솜 씨는 고급지다. 화장실을 갖춘 큼직한 방 한 칸이지만 창문 이 크고, 뒤쪽으로 산이 보여 갑갑한 기미는 없다. 바나나와 차가 무료이고, 복도에 놓인 정수기용 유리컵 을 일일이 비닐로 싸놓은 데서 놀라고 말았다. 이게 하루 12 불짜리 숙소에서 가능한 일인가! 마당에 있는 식당도 허름 하지만 관록이 엿보인다. 가족이 운영하는 듯 넉넉한 인상 의 여성이 하는 요리는 기대 이상으로 맛있고, 영어 잘하는 여성의 응대는 깍듯하고, 노인들도 보인다. 과거의 영화를 보여주듯 고철로 변해가는 미니트럭이 세워진 마당의 야자 수 그림자를 보며 앉아 있는데 어찌나 편안한지, 누구나 바 쁘고 힘들지만 그렇다고 만족하는 사람은 드문 우리 사회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하루 30불 내외의 호텔도 훌륭했다. 푸짐한 태국 요리와 빵, 샐러드, 고급 커피가 나오는 조식이 훌륭하고 서비스도 좋아서 시간은 널널하지만 주머니 사정은 빠듯한 배낭여행 자에게 호텔놀이를 할 수 있게 해준다. 태국의 가정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은 경험도 소중하다. 외국인 남성과 태국 여성이 운영하는 작은 집이 었는데 방 세 개, 조촐한 마당에 커다란 우물이 남아있어 정 겹다. 주인이 우리가 묵을 방에 키를 걸어놓아서 셀프 체크 인 완료, 고양이 한 마리와 개 한 마리가 주인처럼 거실을 살펴보고 돌아가곤 한다. 빈집에 둘이 앉아 고양이와 놀다 보니 전혀 모르는 곳에서 이렇게 편안해도 되는 건가 싶어 어리둥절하도록 좋다. 나는 우물이 있는 풍경을 편애하는지 라 두꺼운 철망이 덮인 우물 위로 빨간 부겐베리아가 늘어 져 있고, 그 사이로 담 위에서 고양이가 그루밍하는 장면이 엿보이는 심상함은 우리가 드디어 일상여행자가 된 듯한 만 족감을 주었다. 단돈 11불에 이국의 방 한 칸과 작은 마당을 독차지하고 내 집처럼 편안하게 쉬는 경험을 해본다면, 높 은 물가에 소비가 천국인 사회 분위기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 같다. 어떻게든 거기에 틈을 내고 숨을 쉴 방도를 찾지…. 나는 곧 죽어도 낭만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을 찾는데 딸은 절약이 최우선인지라 전에는 반항도 해보았지만 갈수록 호 흡이 맞는다. 빠이에서 묵은 두 개의 방갈로는 각각 14불과 28불로 두 배 차이였지만, 다른 것이라곤 잘 정돈된 잔디밭 과 조금 더 크고 넓은 해먹뿐이었으니 그게 뭐 그리 중요하 랴. 절약해서 한 번 더 여행을 가는 게 중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