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모신상에 반해 앙카라박물관에 가다
박물관에 꽂히는 경우는 드문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튀르 키예의 수도 앙카라의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이하 문명박물 관)은 구석기 시대부터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을 전시한 곳이다. 언젠가 그곳의 소장품 사진 한 장에 반해서 오직 박 물관 때문에 앙카라에 갔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되지만 이 동에 따르는 모든 수고는 딸이 했는데 딸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그곳을 좋아하게 되리라는 예감 이 들었다. 차탈회위크의 주거지는 소꿉놀이라면 딱 맞을 정도로 그렇게 작았다. 사슴과 레오파드 무늬가 선명한 부조도 있 었는데 레오파드의 단순한 실루엣에 비해 사슴은 훨씬 사실 적이다. 이런 수준에 비하면 모신상은 완벽하다고 하겠다. 훨씬 뒤인 히타이트 철기시대의 욕조가 캐리어만 하니 그 시대 사람들의 체구가 아주 작았으리라는 증거는 여기저기 에 있다. 그렇게 작은 몸으로 거주공동체를 이루고, 사냥을 하며 살아간 것만도 감격스러운데, 어머니와 대지와 생산을 동일시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감탄스러웠다. 모신상에 깊이 감정이입 하다 보니 인류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다. 멍해질 정도로 규모가 크고 사람 들이 너무 많아서 시장바닥 같았던 대영박물관에서도 갖지 못했던 탐구심이었다. 문명박물관은 1997년에 유럽 최고의 박물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물을 둘러보다 보니 그릇과 장신구, 동물 모양의 조상 으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정교하고 세련되기로는 사슴이 제 일이고, 숫자도 그중 많다. 원 안에 세 마리 사슴을 배치한 청동기시대의 사슴상은 앙카라 시내에 동상으로 제작되어 있을 정도로 대접을 받고 있다. 현대의 작품이라고 해도 손 색없는 조형성에 감탄한다. 유물이 얼마나 많은지 세 줄로 단정하고 품위 있고 아담한 뜰, 거기 있는 새집조차 달랐 다. 오스만 건축양식으로 지은 새집이라도 되는지 2층으로 된 하얀색인데, 2층이 대거 좁아지며 6각형 지붕이 맵시 있 고, 옆구리에 달린 처마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날렵 했다. 뜰에는 눈코입이 뭉개져 바윗돌이 되어버린 로마시대 의 사자상과 세월의 더께를 입고 있는 커다란 옹기들이 늘 어서 있는데 모든 것이 편안하고 박물관다웠다. 문명박물관의 인기 전시품은 인류 최초의 도시 차탈회위 크의 출토품이다. (튀르키예는 지구상 가장 오래된 인간의 집단 거 주지 중 하나이다.) 그중에서도 인류 최초의 모신상이 제일 유 명한데 짙은 색의 토기로 양쪽에 동물을 거느리고 앉아 출 산하는 형상이다. 얼굴과 발은 작은데 몸은 건장하여 가슴 과 배가 축 늘어져 있고, 엉덩이는 위풍당당하게 강조되었 다. 허벅지와 다리도 전사의 그것처럼 두껍고 강인해 보인 다. 내가 여행 전에 사진을 보고 모신상에 반해서는 이 박물 관에 가겠다고 했을 때 딸이 시큰둥하게 “나는 저런 모습 매 일 본다”라고 했던 바로 그 모습이다. 올록볼록한 내 체형이 인류 최초의 모신상과 닮았다니 영광이다. BC 6000년경, 그 까마득한 시기 최초의 인간을 상상해 진열을 해놓아 왔다 갔다 하며 보느라 정신이 없다. 사실 차 탈회위크를 보던 눈으로 6~7세기 유물을 보면 엄청 세련되 어 유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여체를 본뜬 토 기 물병은 은근하고, 동화 속 삽화 같은 집 모양의 도기 물 병은 세련되었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들이 많아 3시간이 후 딱 지나갔다. 슬슬 피곤해지는 몸을 이끌고 지하로 간다. 지하는 석조 물을 위한 공간인데 갑자기 공기가 서늘해지고, 천장이 부 쩍 높아진다. 천장의 장식미가 뛰어나거니와 환풍이며 공기 조절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얘기이다. 돌 썩을까봐 이렇 게 잘해 놓은 거야? 돌을 이 정도로 관리한다면 구석기시대 유물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을지는 안 봐도 훤했다. 바로 여기, 튀르키예는 국민소득으로 보면 우리의 절반 에도 한참 못 미치는데 가끔 이런 저력을 확인할 때가 있다. (우리는 국민소득 2만 7000불, 튀르키예는 1만 1000불, 2016년) 유물 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최우선으로 보존 전시하는 것은 아무 나 하나? 그 안목과 품격에 공연히 투덜댄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튀르키예는 지리적으 로는 3퍼센트만 동유럽에 속하고 나머지는 서아시아에 속 해 있지만, 4세기에 이스탄불(당시에는 콘스탄티노플이라 불림) 이 동로마제국의 수도였으며, 13세기부터 시작된 오스만제 국이 번성하여 이란,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 등을 통치했 다. 동서양의 종교와 문화와 역사가 격돌하고 융합함으로써 엄청나게 복합적이고 두툼한 문화적 유산을 갖게 된 것이 다. 나는 사전지식이 없는데도 직관적으로 이런 중층성에 매료된 것이고. “포도주를 끔찍하게 좋아했고, 노름에 빠졌으며, 여자라면 튀르키예인을 능가했지.” ― 《리어왕》, 3막 4장 에드가의 대사 “이런, 이건 난폭하고 잔인한 스타일이군. 도전자들의 스타일. 이런, 그녀가 내게 도전한 거야. 기독교인에게 도전하는 튀르키예인처럼.” ― <뜻대로 하세요> 3막 4장 로잘린드의 대사 (이호준,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에서 재인용) 튀르키예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도 자주 등장할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었다. 그런 튀르키예가 1997년, 2016년 연달 아 쿠데타가 일어나는 등 정세가 불안해 보여서 마음이 쓰 068 모처럼 문화생할 069 이더니 2023년 초 동부 대지진으로 큰 희생을 입어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
내가 역사의 산물임을 깨닫는 순간
그러다 유리가 나왔는데 얼마나 신기하던지 나도 모르게 “유리다!” 하고 소리를 친다. 유물이 전시된 순서를 따라 신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거치며 인류의 발전에 감정이 입이 된 덕분이다. 내가 어디서 뚝 떨어진 개체가 아니라 1 만 년에 가까운 역사 발전의 산물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집중해서 보느라 급격하게 피곤하고 배도 고파서 서운한 마음으로 박물관을 나와 성채로 간다. 이 동네는 지대가 높 아서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도 환상적인 전경이 펼쳐진다. 앙카라는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분지라 외적 의 침입을 적시할 수 있어서 수도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전 에는 무미건조한 행정도시라고만 여겼는데 아나톨리아 문 명박물관 말고도 언덕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대단하다. 시야 를 가리는 한 점 방해물 없이 눈에 가득 보이는 거대한 하늘 만으로도 감격스럽다. 내가 다른 행성에라도 왔는지 어디에 서도 본 적이 없는 광대무변한 하늘이다. 거기에 구름이 가 득하여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데 그 아래 담황색 지붕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다. 전통마을 분위기가 물씬 나는, 성 아래 마을까지 어울려 차마 두고 오기 아까운 곳이다. 곳곳 에 좋아하는 마음을 숨겨놓고 다니는 여행길이 좋다. 이제 나의 지도에 앙카라도 색깔이 칠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심 장부에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이 있다(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