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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를 손톱만큼 맛보다, 독일 쾨니히제

by essay6653 2025. 3. 24.

독일 쾨니히제

 

 

알프스를 손톱만큼 맛보다, 독일 쾨니히제

 

시내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간다. 집 모양도 비슷하고, 다 들 맥주잔 하나씩 들고 앉은 것도 그렇고, 어디서부터가 독 일인지 굳이 가릴 필요가 없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7시 방향으로 30분, 풍경이 점점 정교해지다가 드디어 탄성 한마디 나올 때, 거기가 베르히테스가덴이다. 4개 나라에 걸쳐 우람한 위용을 자랑하는 알프스 중에서 독일 바이에른 주에 해당한다 해서 바이에른알프스라 불리는 곳. 타운은 아주 작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커다란 마트가 두 개, 스포츠용품 가게가 하나, 숙박업소가 전부다. 흔한 관광지가 아니라 산속 마을에 온 듯, 수려한 산으로 둘러싸 인 작은 마을에 절로 마음이 풀어진다. 베르히테스가덴은 전통복장으로 단장하고 나들이 가는 할머니 모습과 꼭 닮았 다. 머리를 땋아서 이마 앞으로 한 바퀴 두르고, 볕에 타고 세월에 쪼그라든 팔뚝에 뽕소매 블라우스를 입은 자태가 고 와서 카메라를 들이대니 흔쾌히 응해 주신다. 나이 드신 분 들이 사진 찍히는 것 싫어하는데 할머니의 자연스러운 개방 성이 좋다. 할머니! 저는 그런 블라우스 초등학교 6학년 때 입어본 게 전부예요! 베르히테스가덴에서 제일 유명한 쾨니히제, ‘왕의 호수’ 라는 뜻에 걸맞게 깎아지른 암벽의 호위를 받으며 길게 누 운 위용이 대단하다. 바위 아니면 침엽수 단일 수종으로 이 루어져 정갈하고 기품 있는 산에서 호수로 폭포가 떨어진 다. 만년설이 마블링처럼 끼어 있는 바위산도 멋들어진데, 덕분에 멋진 에코를 들려주기도 한다. 중간에 배를 세운 선 장이 트럼펫을 한 소절 불면 메아리가 똑같이 화답하고, 또 한 소절 불면 어린 학생이 선생님의 연주를 따라하듯 정확 하게 되돌아온다. 낭창낭창 흔들리는 청록의 수면 위에서 듣는 자연의 트럼펫 소리가 로렐라이의 노랫소리처럼 나를 빨아들인다. 선장은 이내 모자를 돌리며 팁을 유도해서 내 감동을 제 부업거리로 삼아버렸지만, 쾨니히제 최고의 뷰 포인트인 성 바르톨로메 수도원을 지나 내린 선착장에서 이 메아리는 나를 제대로 사로잡았다. 아무리 봐도 여전히 눈길을 사로잡는, 바위산에 흩뿌리 는 폭포 줄기 아래 초원에 소 열댓 마리가 있는데 워낭 소리 같은 것이 끝없이 계속되는 거다. 은쟁반에 옥구슬을 굴리 는 것 같다는 고전적인 표현이 절로 생각나는 소리, 청아하 고 영롱한 실로폰 소리 같은 것이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데 홀려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 소리가 정확하게 어떤 소리인 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자연밖에 없는데, 바위산밖에 없 는데, 워낭 소리가 계속 메아리치는 것이 아닐런지…. 쾨니히제에서 돌아오는 유람선에서 소나기를 두 번이나 만났다. 해가 쨍 나는가 하더니 갑자기 수면을 세차게 두드 리는 거센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그 와중에 우비로 무장 하고 카약을 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몇 번을 망설 인 끝에 예너반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히틀러의 별장이 있는 캘슈타인하우스도 유명한데 그곳 대신 예너반 을 택한 것. 편도 30분이니 케이블카치고는 꽤 오래 간다. 1874미터 의 예너반에서 바라보는 주변 고봉이며 아래 트래킹 길의 풍경이 볼만하다. 그새 날씨는 개었지만 구름은 좀처럼 걷 혀주지 않았다. 약이라도 올리듯이 감질나게 하나씩 봉우리 의 자태를 엿보게 해준다. 하지만 태클이 없으면 무슨 재미 랴. 한 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운무가 앞을 가려 내가 구름 속에 있구나 싶은 상태에서 벗어나 조금씩 봉우리가 보일 때마다 딸과 나는 환호했다. 옷을 완전히 벗은 것보다 벗기 직전의 여자가 섹시하다더니, 과연 운무 실크 옷이 슬쩍 흘 러내리는 봉우리는 신비로웠다. 이제 근방에서 가장 높고 가장 멋진 위용을 자랑하는 바츠만산(2713미터)만 보면 된다. 쾨니히제의 성 바르톨로메 수도원에서 동쪽으로 쳐다보면, 거대한 암벽의 섬세한 뼈대마다 만년설을 새겨넣어 그중 아 름다운 바로 그 산이다. 이십여 분 정상에서 보초를 섰을까, 내려가는 케이블카 시간 때문에 더 이상은 기다리지 못할 그 시점에 바츠만은 아주 조금 제 모습을 보여주었다. 운무가 걷히는가 하면 또 다시 채워지는 바람에 한 번도 전모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렇기에 더욱 아름답게 상상 속에서 완성되는! 이만하면 됐다, 우리는 기꺼이 만족하며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중에 트래킹 길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저녁에 예너반이 눈에 밟혀 동영상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겨울에는 이곳이 스키장으로 변모한단다. 케이블카에 스키 를 매달고 올라가 그 경사 심한 곳을 스키로 내려오는 사람 들! 지구 끝까지 개발되어 탐험할 곳이 없어진 시대에 스포 츠가 인간의 탐험 욕구를 정례화한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 이 강하게 밀려온다. 축구도 안 보는 몸치로서는 대단한 발 견이다. 다음 날에는 화창하게 날씨가 개어, 우리가 선택한 조촐하고 한적한 호수 힌터제와 아주 잘 어울렸다. 아주 오래전 에는 이곳이 모두 바다였을지도 모르지. 산맥이 융기하며 골짜기마다 갇힌 바닷물은 기기묘묘한 모양의 호수가 되어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유럽 대부분이 그랬지만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접경지역 인 이곳은 유독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어릴 때부터 나 를 표현하고 구현하는 데 익숙한 환경, 내가 그렇듯이 다른 사람에게도 위험요소가 없다고 판단하는 곳, 만에 하나 사 고가 터진다면 공권력이 보호와 중재를 해주리라는 믿음이 있는 곳, 그리하여 공포와 불안과 적의 대신 자유롭고 여유 로운 일상이 존재하는 곳. 숙소 주인아주머니도 딱 산골사람이다. 침실이 두 개인 아파트라 청소하기 싫으면 침실 하나는 잠가놓아도 상관없 는데 그런 잔머리 대신 순한 웃음을 지녔다. 같이 버스를 기 다리다가 버스가 오지 않자 남편에게 우리를 타운까지 데려 다주라고 부탁하며 “잘츠부르크까지는 가지 마” 하고 웃는 다. 사흘 만에 눈에 익은 산봉우리가 어느새 정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