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이니스모어’에서 다정한 자전거를
아일랜드에 대해서는 음악영화 <원스>가 더블린을 배경으 로 했다는 것밖에 모르고 있으니, 한 번 갔다 왔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다.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이 지키고 있는 더블 린 시가는 우리나라 중소도시처럼 조촐해서 정다웠는데 (2014년) 한인 마켓의 라면이며 고추장 가격이 국내와 비슷 해서 많이 놀랐다. 고추장 두 봉지와 라면 열 봉지나마 끌고 가느라 애를 썼는데…. 현미와 찹쌀은 중국산인지 북한산인 지, 우리나라에서 포장한 솜씨는 아닌 것 같은데 버젓이 한 글을 붙이고 진열되어 있고. 더블린 시티갤러리는 더블린의 분위기에 맞게 외관은 평 범한데 내부가 너무 섬세하고 사랑스러워서 입이 벌어졌다. 크지 않은 방이 중첩되는 미로 같은 동선이며, 방마다 벽난 로가 있는 고즈넉함, 앉기가 황송할 정도로 고급스러운 원 목 의자에 미술관다운 차분함이 너무 좋았다. 좋아서 익숙 해진 것인지 익숙해서 좋다고 느끼는 것인지, 아는 화가의 그림을 만나면 반가워서 눈앞이 환해졌다. 르누아르의 <우 산> 속 여인과 아이의 얼굴이 빛나고, 작품의 기조를 이루는 푸른색이 수국처럼 은은해서 마냥 바라보고 있어도 좋았다. 딸도 그 그림이 그저 좋단다. 동물과 스포츠에는 천부적인 애정을 갖고 있지만, 미술에는 별로인 아이가 그런 말을 하 니 신기하다. 미술관에서 나오기 전 다시 한번 보고 간다며 쪼르르 <우산> 앞으로 다가가는 딸을 보노라니,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 각이 든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반드시 가고 싶은 곳도 별로 없고, 단편적인 검색에 따라 몇 군데 찍고 올 수밖에 없으니 그저 우연에 기대야 하지만, 우연의 손길 도 만만치는 않다. 아일랜드 제3의 도시인 골웨이에서 갔던 이니스모어 섬에서 지고의 행복을 맛보게 될 줄이야…. 이니스모어는 돌이 많은 섬이라 제주와 흡사하지만 더 야생적이라고 할까, 평원은 더 넓고 도로 폭은 좁아 다들 자 전거를 타고 이동하는데 내가 자전거를 탈 줄 모르니 딸의 뒤에 타야 했다. 2인용 자전거도 있었는데 길이 너무 안 좋 다 보니 그게 더 힘들지도 몰라 1인용으로 빌렸다. 덩치 큰 엄마를 뒤에 태우고 울퉁불퉁한 길을 가느라 용 을 쓰는 딸에게는 미안하지만 뒤에 탔어도 처음 타보는 자 전거가 꽤 재미있었다. 산책을 무척 좋아하는데 걸으면서 느끼는 바람과 달랐다. 걸을 때는 그저 바람이 분다고 느낀 다면, 자전거를 타니 내가 바람을 가르고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대기를 온전히 느끼는 맛이 운전할 때와도 달랐다. 걷기보다 주도적이고 자동차보다 자연친화적인 자전거의 맛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조금이라도 오르막이면 재빠르게 내려주었다. 내리막에 서는 신나게 타고 내려오는 동안 염소 떼가 길을 막고, 돌담 너머에서 말이 쳐다보았다. 새파란 초원에 돌무더기와 어우 러진 들꽃이 가득하고, 그 너머로 이어진 바다에서는 물범이 헤엄치고, 여행자들은 인증샷을 찍기 위해 무서운 줄도 모르 고 절벽 끝에 서 있었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 너머 거대 하고 너른 바위가 모래사장처럼 펼쳐져 있었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바위 해안이 그로테스크했다. 안 그래도 좋아 하는 들꽃과 돌이 무궁무진해서 미소가 가실 줄을 몰랐다. 그런 풍경 속을 걸어도 좋았겠지만 자전거의 속도감이 마냥 싱그러웠다.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어, 몸을 쓰는 놀이 의 맛을 모르던 내가 자전거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딸의 꽁무니에 탄 채로. 풍경도 완벽했지만 내가 이니스모어를 각 별하게 기억하고 있다면 그건 순전히 자전거 덕분이다. 3주 뒤 불가리아 바르나에서는 2인용 자전거를 탔다. 불 가리아가 우리네 지방 도시같이 익숙해서 서운하던 마음은 바르나 해안공원 깊숙이 숨어 있는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면 서 풀어졌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부드러운 햇살과 살랑거리 는 미풍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해안에는 식 당이나 클럽을 이용하지 않으면 바다에 접근하기 어렵도록 흉물스러운 시멘트 건물이 가로막고 있어 울적하던 참이었 다. 이건 자연과 시민에 대한 횡포라고 흥분하던 마음을 겨 우 달랠 수 있었다. 둘이서 하나의 자전거를 움직이는 것이 그렇게 다정하고 든든할 수가 없었다. 호흡을 맞춰 밟아대는 페달이 하나의 심장을 공유하는 듯한 유대감을 주었다. 둘 다 무뚝뚝하여 간지러운 것 싫어하는 모녀에게는 아주 귀한 일체감이 낭랑 한 웃음소리가 되어 공중으로 울려 퍼졌다. 그 뒤로는 혼자 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어디선가 2인용 자전거를 탈 기회가 또 있었는데 내가 혼자 타고 싶어서 2인용을 거절 하자 딸이 흐뭇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