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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리아! 남의 땅덩어리 이름에 가슴이 떨리다

by essay6653 2025. 4. 6.

아나톨리아

 

아나톨리아! 남의 땅덩어리 이름에 가슴이 떨리다

 

튀르키예 식당에서는 빵이 공짜다! 우리네 식당에서 음 식값에 밥값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별일도 아니건만, 테이블마다 원통형으로 푸짐하게 쌓아놓은 바게트(튀르키예어로 에크멕)를 볼 때마다 나는 행복해졌다. ‘음식이 공짜’라 는 현상은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대한민국을 점령한 물신주 의에 쩐 눈으로 볼 때 세상 어디에도 없는 파격이자 풍요이며, 이 땅의 사람들이 얼마나 넉넉한 성정을 가졌을지 짐작 이 가는 일이었다. 알고 보니 튀르키예는 식량 자급이 가능 한 나라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는 2021년 기준 식량자급률 40.5퍼 센트, 산정 방식에 따라 수치의 차이가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38개 국가 중 최하위인 것은 확실한 듯.) 동부에서 광활한 경작지를 확인했을 때 남다른 감회가 인 것도 그래서였다. 튀르키예의 저가항공 ‘페가수스’ 편으 로 이스탄불에서 시바스로 가는 중이었다. 꼬박 한 시간 동 안 산악 구릉지대가 펼쳐지는데 실로 스펙터클 했다. 나무라 곤 한 그루도 없는 누런 땅이 높으면 산악이요, 낮으면 구릉이고, 골짜기가 모여드는 아늑한 곳에는 마을이 보이기도 했다. 아나톨리아! 남의 땅덩어리 이름에 가슴이 떨려왔다. 이런 대륙을 가진 민족과 그렇지 못한 민족 사이에 기질의 차이가 없다면 이상할 것이다. 목적지인 시바스에 가까워 오면서 구릉 위에 정교하게 나뉜 조각보도 볼만했다. 간혹 나무가 보일 뿐 여전히 초록 색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했는데, 내려서 보니 밀밭 같은 데 9월 초에 이미 다 벤 상태였다. 시바스에서 하루를 묵고 버스로 에르진잔으로 가는데 이 번에는 눈앞에 똑같은 평원이 펼쳐진다. 하루 전에 창공에 서 내려다본 길을 버스를 타고 눈높이를 맞추니 이 또한 감 격스러웠다. 맞아, 맞아! 저렇게 정교한 물결무늬 산자락이 있었고, 이렇게 거친 구릉도 많았지. 간간이 보이던 마을은 이런 모습이었구먼. 풍경이 3D로 보였다. 한 집당 산등성이 하나씩 경작하나 싶을 정도로 집이 드 문드문 있었다. 튀르키예에서 왜 빵이 공짜인지를 알 것 같 았다. 풍경 또한 에크멕만큼이나 풍성해서 나는 3시간 20분 동안 질리지도 않고 창밖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운 좋 게 앞 좌석에 앉은지라 우등버스의 커다란 통창으로 온갖 형 태의 산과 언덕과 평원이 지나갔다. 산속에 있는 외딴집을 보면, 사방으로 수백 킬로미터가 밀밭인 곳에서 사는 삶은 어떤 것일지 섣불리 쓸쓸하다거나 고달프다고 말해선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살던 사람들이 평원에 한두 기의 묘로 남 은 것을 보면 사는 게 뭘까 하는 생각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우리는 튀르키예가 유프라테스강의 발원지라는 데 놀라 거기까지 갔다. 케말리에 카란륵 협곡의 뿌연 회백색 강줄 기가 초라할 정도로 좁아서 당황스러웠지만 그 이름도 찬란한 유프라테스강이다. 강폭은 좁지만 튀르키예 동부에서 발 원하여 이라크, 시리아로 흘러가 티그리스강과 합류하여 메 소포타미아문명의 발원지가 되었으니, 끈질긴 생명의 강이 라 하겠다. 주변에 오염 요인이라곤 없이 원시 자연뿐이니 물 색깔이 희뿌연 것은 아마 석회성분이 많은 탓인 것 같다.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곳곳에서 성경에 나오는 지명을 만나는 것도 감격스러운 일이다. 원형극장과 목욕탕, 고급 주택가, 심지어 유곽 터까지 남아 있는 튀르키예 최대의 고 대도시 에페스가 그렇고, 튀르키예의 최고봉 아라라트산 (5185미터)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곳 이란다. 이만하면 태초의 땅 아닌가!

 

 

손님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튀르키예는 이렇듯 장엄하고 다양하고 넉넉하고 호쾌했 다. 다 있었다. 그러니 여한이 없을 때까지 이 세상을 맛보 고 싶어 하는 내가 혹할 수밖에. 이렇게 중층적인 매력을 가 진 곳이 쌀쌀맞다면 그림의 떡일 텐데(로마의 커피숍과 숙소에 서 심하진 않아도 분명히 무시를 받았다) 손님을 신이 보내준 선 물이라고 생각한다는 튀르키예 사람들답게 우리는 어디에 서나 후한 대접을 받았다. 길을 물어보면 다른 사람에게 물 어서라도 끝까지 데려다주었고, 모르는 사람인데도 차 한잔하고 가라고 종종 붙들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야외에 놀 러 나오면 숯불을 피워 닭고기를 굽고 그 불에 차이를 끓인 다. 아시아지구 해안에서 어느 가족이 커다란 석쇠 가득 닭고기를 굽고 있는 것이 탐스러워 “와우!” 했더니 하나 먹겠 느냐며 안주인이 권하는데 그냥 지나친 적이 있다. 그랬더 니 이 분 보소, 우리가 한창 걷고 있는데 꽤 멀리까지 넓적 한 빵에 닭다리 하나를 얹어 들고 쫓아온 것이다. 그런 경험 이 있기에 에르진잔의 어느 폭포(Girlevik)에서는 차이 한잔하 라는 가족의 권유에 스스럼없이 앉을 수 있었다. 야산의 잡석과 덤불 속에서 여기저기 미니 폭포가 쏟아지고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비경 ‘플리트비체’ 한 모퉁이에 불과한 규모지만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하얀 포말은 감탄하기에 충분했다. 에크멕과 닭고기, 차이로 금방 테이 블이 차려졌다. 우리도 버스 타기 전에 산 포도가 있어 꺼내 놓는다. 그날 우리는 어디에서도 좀처럼 받기 어려운 환대 를 받았으니…. 들고 있던 물병을 기울여 물을 마시면 플라 스틱 컵이나마 내놓고, 휴지 한 장을 쓰고 나면 득달같이 휴 지를 리필해 놓고, 급기야 물티슈가 나오고,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는지 5학년쯤 되어 보이는 큰애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 영어 단어를 꺼내 놓는다.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산 아래 마을을 가리킨다. 그러고는 자기 집에 가잔다. 가족 모임에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 같아 일어나며, 할 머니와 살짝 껴안고 양볼을 맞대기까지 한다. 이 사람들은 정말이지 일순간에 무장해제를 시켜 버린다. 그러니 제주의 어느 해변에서 동네 사람들이 야유회를 나온 듯 커다란 천 막을 치고 고기를 굽는 곳을 지나치며, 이런 말을 한 것은 진심이었다. 섭지코지 언덕을 내려가 말들이 풀을 뜯는 곳 옆이었고, 그날따라 딸과 나는 몹시 배가 고팠다. “튀르키예였으면 우리 보고 먹고 가라고 붙들었을 텐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