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공항에서 집시가 되어
몇 군데 돌아다녀 보니 인천공항처럼 크고 화려한 곳이 없 다. 대부분 조촐하고 깨끗한 수준인데 슬로바키아공항도 딱 그랬다. 2014년 6월, 벽 하나를 차지한 유리창을 통해 비치 는 구름이 마냥 싱그럽다. 전날 더블린공항에서 노숙을 했 는데도 몸이 그 어느 때보다 가볍다. 새벽 6시 비행기라 4시 까지는 나와야 하는데 몇 시간 자고 한밤중에 움직이느 니 그냥 공항에서 밤을 지냈는데, 노숙이라고 해도 그렇게 험하진 않았다. 총 3번쯤 공항 노숙을 해보았나? 더블린공항은 특히 편한 것이, 넓은 2층 공간을 맥도날드가 혼자 쓰고 있었는데 매장으로 관리하는 곳은 4분의 1 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여행자들 차지였다. 푹신한 장의자 를 하나씩 차지하고 노트북을 켜니, 뭐 집에서 컴퓨터 좀 하 다 소파에서 자는 것 같다. 환하게 불이 켜져 있고, 같은 선 택을 한 여행자들이 주변에 잔뜩 있고…. 앞자리의 민머리 아저씨 인상이 험해서 조금 신경이 쓰였는데, 이분이 너무 부끄러워하면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 테니 자리 좀 봐달라 고 하는 게 아닌가. 수줍어하는 모습이 귀여울 정도라서 그 래그래, 공연히 사람을 의심부터 하는 버릇을 내려놓자고 마음먹는다. 늦도록 검색하다가 두어 시간 눈을 붙였나, 피곤하니까 이번에는 비행기 안에서 푹 잠이 들었다. 2시간 45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고 숙면을 하고 나니 몸이 가뿐하다. 공 항 노숙이나 비행기 타는 일이 집 앞 편의점 가는 일처럼 익 숙하고 쉬워진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 슬로바키아에서 3박을 한 뒤에 빈에서 10박을 할 예정인 데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오스트리아 수도 빈은 불과 버스로 한 시간,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수도라고 하는데 한 시간 만에 국경을 넘어가는 것도 재미있고, 지도 위에 낯선 이름으로 존재하던 나라들을 누비고 다니는 것에 깊은 만족감이 든다. 납작하던 지도가 돌연 부풀려지며 그 안에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환상을 보듯 동화적인 상상력 이 솟구친다. 늘 한탄하듯이 레퍼런스가 부족해서 낱낱이 찾아다니고 누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 순간을 맘껏 즐 기리라 다짐한다. 공항을 통틀어 음식점이라곤 한 군데밖에 없다(입국장). 참, 유럽 조촐한 건 알아줘야 하는 것이 중세 때부터 계속되 었다는 아일랜드 골웨이 주말마켓에 나온 상인이 십여 명이 나 되려나? 액세서리와 목공예, 서툰 그림 등을 들고 나왔던 데, 규모만 보면 경기도청 벚꽃길에 나온 노점상만도 못하 더라. 아무튼 오늘의 요리가 5.7유로, 착한 가격이 마음에 드는 데 세상에 물을 갖다 준다! 유럽의 식당에서 물 주는 곳은 처음이다. 물 인심이 넘치는 우리나라 생각해서 식당에서 물을 사 먹을 때 배알이 꼬였는데, 슬로바키아! 아무런 기대 도 정보도 없이 들어온 것치고는 출발이 아주 좋다. 물 한 잔에 점수 팍팍 올라간다. 물 한 잔을 새롭게 볼 수 있고, 물 한 잔에 환호할 수 있는 것이 여행의 매력인가. (마찬가지로 유럽의 모든 공중화장실이 유료. 보통 1유로, 싼 곳은 20센트를 받는 다! 화장실 인심만은 우리나라가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한쪽에 경비행기를 매달아놓은 감각도 좋다. 자유와 스 타일의 완성이 경비행기 아닌가.나는 돌아다니다가 잠시 쉬 고 싶으면 바닥이라도 스스럼없이 앉는 편인데, 최근에만도 두 번이나 경비원에게 제지를 당한 적이 있다. 한 번은 남대 문시장 쇼핑몰 앞, 한 번은 어느 도로변의 주차장 앞이었는 데 두 군데 다 경비원이 와서는 이상해 보이니 일어나라는 것이다. 그러니 공항 복판에 철퍼덕 주저앉은 아기엄마가 예 쁠 수밖에! 잠시 길가에 앉는 것도 이상하게 보는 분위기가 갑갑하던 차에, 공항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니 내 집처럼 편하다. 숙소 체크인이 2시라 시간 좀 때우고 들어가려고 노트북 이며 핸드폰 충전기를 늘어놓으니 한 살림이다. 간밤의 노 숙에 이어 많은 것을 길 위에서 해결하는 기분이라 졸지에 집시라도 된 것 같다. 저 아기엄마는 곱상한 외모에 단정한 차림새라 집시 같아 보이진 않지만, 지나치게 소탈한 외모 인 나는 자칫 부랑자로 오인받을 인상이지만 그래도 좋기만 하다. 안 그래도 물욕 없고, 체면치레 싫어하지만 여행을 다니 면 진짜 바람의 딸이라도 된 양,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 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천하를 주유할 수 있을 듯 싶다. 땅따먹기하듯 지도 위에 익숙한 곳이 늘어나는 것도 좋고.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더 절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렴하게 인생을 즐기기! 또 하나의 인생 주 제가 떠오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