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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 닌빈, 짱안

by essay6653 2025. 4. 8.

사파 닌빈 짱안

 

사파, 닌빈, 짱안

 

중국과 국경을 이루는 고산지대의 마을 ‘사파’에는 끝없 이 이어지는 다랭이논이 전부인데 엄청난 관광타운이 조성 되어 있다. 우리 남해에서 볼 수 있는 다랭이논을 수천 배 확대시켜 놓은 풍경이라 친근한데 거기를 감싸는 운무가 장 관이다. 운무가 특산물이고 운무가 관광자원인 곳. 소수민 족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닌빈’에는 수십 킬로에 걸쳐, 오랑우탄의 머리같이 울 퉁불퉁한 돌산이 펼쳐진다. 동네 초입에는 맨땅에 솟구쳐 있어도 볼만했는데 점점 주변이 논이나 늪으로 변하더니 종 국에는 호수가 되며 환상적인 데칼코마니를 보여준다. 우락부락한 돌산 옆에 나무만 있든, 오두막까지 있든, 방갈로가 있든 물에 비치는 반영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예술작품이라 도 접한 듯한 감동을 받았다. 흔한 꽃을 거대하게 그렸을 뿐 인데 독보적인 분위기를 획득한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을 보 는 것 같았다. 우리는 호수의 끝에 대나무로 지은 방갈로에 묵었는데 여기가 하노이처럼 번잡한 지역과 같은 나라 맞나 싶을 정 도로 한적하고 깔끔한 동네였다. 아저씨는 대나무 뿌리로 만든 담뱃대에 쌈지 담배를 피우고, 아가씨는 소를 몰고, 염 소들은 주인도 없이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며 풀을 뜯는다. 퐁당 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면 무슨 고기인지 꼬리만 보여 주며 물을 차고 들어가 버리는 얕은 물을 삿대로 밀어가며 아주머니 둘이 대나무를 나른다. 닌빈 주에 속한 ‘짱안’은 또 얼마나 신비로웠던가! 거대 한 석회암 절벽으로 둘러싸인 ‘홍강(Red River)’ 삼각주라는데 배를 타고 주변 절경을 누리며 신비한 수상동굴을 3시간 동 안 들락날락하는 관광상품이 인당 7500원(2016년)이니 베트 남의 관광 저력이 엄청나다 하겠다. 물이 맑아서 얼마나 고 마운지 몰랐다. 하노이와 호치민의 엄청난 오토바이 행렬은 놀라웠지만 매연이 심란했고, 무이네의 리조트에는 온통 외 국인뿐 현지인이라곤 과일장수밖에 보지 못한 데 대한 안타 까움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수초가 비치는 비취색 물에 병풍을 두른 기암절벽을 보며, 시골 친척같이 친근한 베트 남 사람들이 하늘이 내린 자연을 잘 보존하여 비상의 젖줄 로 삼기를 나는 기도했다. 뱃사공을 모두 여성이 하고 있는 것이 특이했는데, 우리 뱃사공은 소녀 같은 인상이었다. 그날 소녀는 운이 좋았다. 배에는 여분의 노가 4개 있었는데 관광객에게 노 젓기 체험 의 기회도 주지만 실은 뱃사공의 체력을 배려한 것이라는 짐작이 왔다. 다른 배에 탄 사람들은 뻣뻣이 앉아서 그냥 가 던데, 함께 탄 독일인 커플과 우리 모녀는 구령에 맞춰가며 신나게 노를 저었다. 우리 배는 쑥쑥 앞선 배를 추월하며 신 나게 미끄러졌다. 소녀의 노를 옆눈질로 보며 정확하게 박 자를 맞췄을 때, 마치 소녀의 마음과 내 마음이 겹쳐지는 것 같은 따스한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배에서 내리며 무심히 건넨 팁 10000동이 우리 돈으로 불과 500원이라는 데 내 마음이 불편해진 것이다. 큰 지폐밖에 없었고 독일 여성도 10000동 을 주기에 그리 했다며, 검색해 보니 보트 하나에 팁 20000동이면 정상 수준이라고 딸이 나를 달래주었으나, 나는 겨 우 팁 500원을 건넨 것이 민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 가 내내 보여준 싹싹하고 정겨운 태도가 성격이기도 하지 만, 팁에도 원인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냥 넘어가면 두고두고 불편할 것 같았다. 딸의 눈치를 보며  종용하니 다 행히 오토바이 운전을 해준다. 다음 날 다시 보트 선착장으로 가서 창구에 사진을 보여 주니 연락을 받은 그녀가 달려왔다. 다행히도 노를 젓고 있 는 중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무슨 일인가 하는 의아 심을 넘어 거의 공포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어 딴사람 같았 다. 다짜고짜 40000동(2000원)을 쥐여줘도 표정을 풀지 않더 니, 핸드폰에 저장한 제 사진을 보여주며 이리저리 묻고 다 녔다는 시늉을 하자 비로소 활짝 웃는다. “감사합니다!” 소 녀같이 해맑은 전날의 목소리를 내며 내 손을 잡으면서 고 마워한다. 우리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그 날 소녀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무슨 타이타닉이라고

 

시간이 좀 흘렀지만 간간이 언급한 물가만 보아도 베트 남 여행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 물가 가 싼 데서 더 절약하는 사람이 우리 따님이다. ^ ^ 베트남에는 특이하게 침대버스가 있어서 이동시간과 숙 박비를 절약할 수 있는데 우리 같은 배낭여행자에게 딱 좋 다. 버스에 3줄씩 2층으로 침대가 놓여 있다. 앞사람의 등이 올라가고 거기로 내 발을 뻗을 수 있는 구조라 꽤 많은 침대 가 놓여 있는 데다 1층 통로에는 좌석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 이 담요를 깔고 누워 있다. 뭐랄까, 여행체험을 넘어 삶의 끝을 엿보는 기분이었다. 물론 손 빠르고 생각 깊은 따님은 2층 좌석을 구했다. 휴 게소에 들르려고 잠깐 나갈 때면 1층으로 내려가 슬쩍 몸을 비켜주는 사람들을 헤쳐서 지날 때 절로 한숨이 나왔는데, 산다는 것의 절박함이랄지 극한상황을 느껴본 것이다. 그럼 에도 눈을 붙이다 잠깐 깼을 때, 실내도 깜깜하고 바깥도 칠 흑같이 어두운데 수많은 사람이 운전자와 보조운전자 두 사 람을 믿고 자고 있는 광경은 묘한 감동이었다. 2016년 하노 이에서 사파 포함 두 번 타보았는데 그때만 해도 50대였고, 살면서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모두 추억이 된 광경이다. 거기에 비하면 닌빈에서 다낭까지 15시간 야간열차는 영 화에서나 보던 이색 문화 체험이었다. 양쪽 벽에 이층침대가 붙어 있어 한 공간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 이 들어올까 하는 것이 제일 큰 걱정었다. 다행히 남아공에 서 온 커플이라 걱정이 일순에 해결되었다. 남자는 순하고 여자는 발랄하여 아주 편안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접 한 영어 속담 “용기 있는 자가 미녀를 얻는다The brave get the beauty”라는 말이 떠올라 말을 붙였을 때 남자가 척하니 받아 주어서 신기했다. 작은 일이지만 순간적으로 업되는 기분, 흠흠. 이런 게 대화의 맛이겠구먼. 여자를 바라보며 “You are so beautiful!” 하고는 남자를 바라보며 “You must be”까지 했을 때 남자가 “brave”라고 받아친 것이다. 그 기차에는 타이타닉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엄격한 공 간 분리가 되어 있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는 서툴지만 문화의 속살을 느끼고 싶어하는 내게 커다란 감상을 안겨 주었다. 우리가 탄 4인용 침대칸을 지나니 복도부터 허름해 지는 6인용 침대칸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자 칸을 지나니, 딱딱한 나무의자 칸이 나왔다.  나무의자 칸의 창문은 철망으로 되어 있어 무임승차를 막고 있고, 천 장에 닥지닥지 붙은 선풍기가 에어컨이 없음을 알려준다. 나무의자 칸에서 남루한 일가족이 옥수수를 먹고 있고, 어 린아이는 의자 밑바닥에서 자고 있는데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능가하는 페이소스가 느껴져 순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열망에 가슴이 떨렸다. 4인용 침대칸이 3만 원 정도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