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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노란꽃에 반하다 사파 닌빈 짱안

by essay6653 2025. 3. 15.

사파

 

가성비의 달인 딸의 최애 여행지는 베트남

 

딸은 여행 갈 때 작은 양파망을 가지고 간다. 호텔에서 쓰고 남은 작은 비누를 모아 빨래하면 딱 좋다고 한다. 물가 비싼 유럽여행을 어찌 다녔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니 베트남을 최 애 여행지로 낙점한 모양이다. 젊은 애가 너무 지독하니까 전에는 티격태격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 나도 완연하게 적응 한 기분이 든다. 어느새 딸은 30대, 나는 60대로 진입하며 서로가 원하는 것을 맞춰주는 기술이 향상됐고, 나는 은퇴 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성비의 달인 딸이 낙점한 베스트답게 베트남은 가성비 갑이다. 딸은 네 번째, 나는 세 번째 베트남에 갔을 때는 (2018년) 너무 익숙해서 설레지도 않았다. 한밤중에 4시간 40 분 날아간 나짱에서 새벽에 쌀국수를 먹으러 나갔는데, 소 고기 육수에 선지까지 들어간 쌀국수가 단돈 2000원, 디저 트로는 100퍼센트 사탕수수 착즙이 500원이다. 집에서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을 시간에 두리안 향기 스치는 거리에 서 원조 쌀국수를 먹다 보니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즐거워 지며 베트남이 가성비 최고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베 트남은 생각보다 훨씬 풍요로운 나라이다. 모든 것이 싸고 풍요로워 마음이 돈짝만 해진다. 유명한 오토바이 행렬을 비롯해서 도약하려는 활기가 거리에서 느껴진다. 가장 쉽고 빠르게 여행이라는 마법을 가능하게 해주는 곳, 베트남.

 

노란 꽃에 반하다

 

2011년 설날에 베트남에 처음 갔는데 베트남의 명절도 우리와 같아서 온통 노란 꽃 천지였다. 명절에 제사상을 노란 꽃으로 장식하는 풍습이 있나 보다. 시장에서는 야채 옆 바구니에 담겨서, 오토바이 뒤에 탄 사람의 손에 어김없이, 주택가에서는 도로를 향해 내놓은 화분마다 범람하는 노란 꽃에 반하고 말았다. 꽃을 사랑하는 민족이 단박에 좋아져 서는 나도 노란 꽃다발을 사서 호텔에 들어갔더니 주인장이 반색을 하며 크게 웃던 기억이 난다. 전에 캄보디아에서 집 요하게 “원 달라!”를 외치는 아이들의 구걸행각에 진을 뺀 탓에 완연하게 점잖은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점수가 마구 올라갔다. 딸이 쌀국수 마니아라면 나는 반미가 제일 좋았다. 베트 남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탓에 바게트가 프랑스 못지않게 맛있다는데, 파삭한 바게트를 갈라 각종 고기와 야채를 넣 은 반미는 정말 맛있다. 2011년에는 바게트만 사면 100원, 반미는 500원에서 700원쯤 해서 그야말로 환상적인 물가였 는데, 요즘 물가는 어떤지 모르겠다. 딸이 모처럼 친구와 둘이 갔다 오더니 하롱베이보다 좋더 라며 나를 닌빈으로 데려갔는데 거기에서 베트남의 자연에 푹 빠졌다. 베트남 하면 먼저 떠오르는 하롱베이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그보다 훨씬 다양한 곳을 보고 누렸으니, 베트남은 기다란 땅덩어리만큼이나 다채로운 매력을 가지고 있다. 북 부의 사파와 닌빈이 자연의 보물창고라면, 중부의 달랏과 무 이네는 고급 휴양지로 리조트면 리조트, 해양스포츠면 해양 스포츠 어느 것 하나 꿀리지 않는다. 그러다 자연에 지치면 다낭과 나짱에 가면 된다. 거기는 또 프랑크푸르트에 지지 않는 고층빌딩이 무성한 비즈니스 도시라서 도시가 주는 혜 택을 맘껏 누릴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그 어디보다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정확한 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체감 물가가 우리의 30퍼센트 정도라고 느꼈다.

 

사파, 닌빈, 짱안

 

중국과 국경을 이루는 고산지대의 마을 ‘사파’에는 끝없 이 이어지는 다랭이논이 전부인데 엄청난 관광타운이 조성 되어 있다. 우리 남해에서 볼 수 있는 다랭이논을 수천 배 확대시켜 놓은 풍경이라 친근한데 거기를 감싸는 운무가 장 관이다. 운무가 특산물이고 운무가 관광자원인 곳. 소수민 족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닌빈’에는 수십 킬로에 걸쳐, 오랑우탄의 머리같이 울 퉁불퉁한 돌산이 펼쳐진다. 동네 초입에는 맨땅에 솟구쳐 있어도 볼만했는데 점점 주변이 논이나 늪으로 변하더니 종 국에는 호수가 되며 환상적인 데칼코마니를 보여준다. 우락부락한 돌산 옆에 나무만 있든, 오두막까지 있든, 방갈로가 있든 물에 비치는 반영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예술작품이라 도 접한 듯한 감동을 받았다. 흔한 꽃을 거대하게 그렸을 뿐 인데 독보적인 분위기를 획득한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을 보 는 것 같았다. 우리는 호수의 끝에 대나무로 지은 방갈로에 묵었는데 여기가 하노이처럼 번잡한 지역과 같은 나라 맞나 싶을 정 도로 한적하고 깔끔한 동네였다. 아저씨는 대나무 뿌리로 만든 담뱃대에 쌈지 담배를 피우고, 아가씨는 소를 몰고, 염 소들은 주인도 없이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며 풀을 뜯는다. 퐁당 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면 무슨 고기인지 꼬리만 보여 주며 물을 차고 들어가 버리는 얕은 물을 삿대로 밀어가며 아주머니 둘이 대나무를 나른다. 닌빈 주에 속한 ‘짱안’은 또 얼마나 신비로웠던가! 거대 한 석회암 절벽으로 둘러싸인 ‘홍강(Red River)’ 삼각주라는데 배를 타고 주변 절경을 누리며 신비한 수상동굴을 3시간 동 안 들락날락하는 관광상품이 인당 7500원(2016년)이니 베트 남의 관광 저력이 엄청나다 하겠다. 물이 맑아서 얼마나 고 마운지 몰랐다. 하노이와 호치민의 엄청난 오토바이 행렬은 놀라웠지만 매연이 심란했고, 무이네의 리조트에는 온통 외 국인뿐 현지인이라곤 과일장수밖에 보지 못한 데 대한 안타 까움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수초가 비치는 비취색 물에 병풍을 두른 기암절벽을 보며, 시골 친척같이 친근한 베트 남 사람들이 하늘이 내린 자연을 잘 보존하여 비상의 젖줄 로 삼기를 나는 기도했다. 뱃사공을 모두 여성이 하고 있는 것이 특이했는데, 우리 뱃사공은 소녀 같은 인상이었다. 그날 소녀는 운이 좋았다. 배에는 여분의 노가 4개 있었는데 관광객에게 노 젓기 체험 의 기회도 주지만 실은 뱃사공의 체력을 배려한 것이라는 짐작이 왔다. 다른 배에 탄 사람들은 뻣뻣이 앉아서 그냥 가 던데, 함께 탄 독일인 커플과 우리 모녀는 구령에 맞춰가며 신나게 노를 저었다. 우리 배는 쑥쑥 앞선 배를 추월하며 신 나게 미끄러졌다. 소녀의 노를 옆눈질로 보며 정확하게 박 자를 맞췄을 때, 마치 소녀의 마음과 내 마음이 겹쳐지는 것 같은 따스한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배에서 내리며 무심히 건넨 팁 10000동이 우리 돈으로 불과 500원이라는 데 내 마음이 불편해진 것이다. 큰 지폐밖에 없었고 독일 여성도 10000동 을 주기에 그리 했다며, 검색해 보니 보트 하나에 팁 20000동이면 정상 수준이라고 딸이 나를 달래주었으나, 나는 겨 우 팁 500원을 건넨 것이 민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 가 내내 보여준 싹싹하고 정겨운 태도가 성격이기도 하지 만, 팁에도 원인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냥 넘어가면 두고두고 불편할 것 같았다. 딸의 눈치를 보며  종용하니 다 행히 오토바이 운전을 해준다. 다음 날 다시 보트 선착장으로 가서 창구에 사진을 보여 주니 연락을 받은 그녀가 달려왔다. 다행히도 노를 젓고 있 는 중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무슨 일인가 하는 의아 심을 넘어 거의 공포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어 딴사람 같았 다. 다짜고짜 40000동(2000원)을 쥐여줘도 표정을 풀지 않더 니, 핸드폰에 저장한 제 사진을 보여주며 이리저리 묻고 다 녔다는 시늉을 하자 비로소 활짝 웃는다. “감사합니다!” 소 녀같이 해맑은 전날의 목소리를 내며 내 손을 잡으면서 고 마워한다. 우리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그 날 소녀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