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은 직무유기다, 옥정호
새벽 5시, 코앞에 있는 사람만 식별되는 어둠 속에 핸드폰 손전등 기능이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77세이던 엄마도 계 신데 다행히 오르막이 심하지는 않았다. 잘 정비된 나무 계 단을 20여 분 오르니 갑자기 천상에 도달한 기분이다. 희뿌 옇게 점차 넓어지는 시야가 온통 구름바다였다. 병풍처럼 야트막한 산, 아니 이제는 구름바다에 떠 있는 섬이라고 불 러야 할 것들이 삼중 사중으로 겹쳐 서 있는 틈새마다 운무 가 가득 차 돌연 차원이 다른 세계에 들어선 것 같았다.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나는 것도 벅차긴 했다. 아무리 흐린 날에도 구름 위는 맑다더니, 눈을 가늘게 떠야 할 정도 로 강렬한 직사광선을 받아 더욱 찬연하게 빛나는 뭉게구름 은, 당장이라도 그 위로 신선이 걸어올 것처럼 환상적이었 다. 지금 여기서 보는 풍경은 작은 비행기 창문으로 보던 것 과 또 다르다. 이쪽저쪽을 보아도 온통 구름바다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며 제일 먼 산부터 색깔이 변하는 것을 보는 재미에, 멀리서 들리는 늑대를 닮은 개 짖는 소리에, 어릴 적 외가의 익숙한 기억을 일깨우는 꼬끼오 소리가 입체적인 흥취를 자아낸다. 운무는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몽글몽글 서로 뭉치 며 올라오는가 하면, 얇게 펼쳐져 제일 얕은 섬을 집어삼켰 다. 성질 급한 쪽은 동영상으로 찍어도 될 만큼 빠르게 일어 서고 펼쳐지며 한바탕 파노라마를 보여주었다. 1박 기차여행을 계획할 때 애초 코스는 내장산과 선운사 였다. 내장산은 단풍구경이 이른 대신 인근의 구절초 군락 지가 궁금했고, 선운사의 꽃무릇은 피크타임이 지났다고 해 도 나 볼 것은 남아 있으려니 했다. 그런 계획이 꼬이기 시 작한 것은 정읍의 산외 한우마을에서부터였다. 내장산에 들 렀다가 저녁을 먹으러 산외마을에 갔는데, 관광안내소 직원 의 말과는 달리 이 마을에는 숙소가 없었다. 다행히도 식당에서 모텔 하나를 소개받아 픽업 차량을 탔다. 우리가 구절 초를 보려던 옥정호 부근이라는 말만 듣고 간 숙소는 놀랍 게도 정읍을 넘어 임실 땅이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은 국면이 나타나는 이것이 여행의 맛이겠거니 하며 주인의 권유대로 다음 날 새벽에 국사봉에 오르기로 했다. 국사봉! 그렇게 우연히 출사지로 유명한 최고의 전망대 에 오르게 된 것인데, 내게는 각별하게 잊지 못할 곳이 되었 다. 얼마 전부터 자꾸만 운무 사진과 맞닥뜨렸다. 설악산일 때도 있었고, 옥정호 사진도 보았다. 새벽 물안개를 높은 곳 에서 보면 이런 절경이 나오는구나, 한번 보고 싶었지만 차 를 없앤 뒤로 기동력이 줄어들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 하여 소박하고 만만한 코스를 잡았던 것인데 우연의 힘이 나를 운무에게로 몰아주었으니 어찌 신기하지 않으랴! 한없는 감회에 젖어 구름바다를 탐닉하고 있는 동안에도 시시각각 풍경은 변하고 있었다. 사이좋게 겹쳐 선 쌍둥이 산의 정중앙에서 솟아오른 해가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이 운해를 벌겋게 물들일 것이 기대되었지만, 옷 을 얇게 입고 가서 꽤 추웠고 우리를 태우고 온 차량이 기다 리고 있어서 내려오고 말았다. 이곳은 일찌감치 올라와 몇 시간을 머물더라도 그때마다 풍요로운 장면을 보여주겠구 나, 언제고 단단히 준비를 갖추어 다시 오리라 마음먹고 아 쉬운 발길을 돌리는데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이제부터가 진 짜 볼거리인데 왜 벌써 내려가?” 하신다. 그 말투가 어찌나 친근하고 따뜻한지 묘한 감동에 젖는다. 나는 우연히 간 길 이었지만 새벽 출사라는 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의 우호감이 느껴졌다. 나 역시 좀 전 전망대에서 내 연배의 두 남자가 몰두해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한껏 우의를 담아 인사하고 오지 않았던가! 딸: “(옥)정호야, 잘 있어라. 정말 아쉽구나.” 나: “(옥)택연이하고 종씨네.” 딸: “안 돼, 안 돼, 싫어!” 딸도 못내 아쉬운지 너스레를 떤다. 진정 두고 오기 아까 운 곳이었다. 해외여행과 레저스포츠를 평생 과업으로 여기 고 있는 딸은 국내 여행에 대한 편견을 바꿔 놓은 곳이었다 며, “엄마, 이제 가구 사지 마. 우리 히피처럼 살자” 한껏 고 조되었다. 산외 한우마을은 생각보다 컸다. 정읍에서 버스로 논두렁 밭두렁을 한 시간이나 달려간 촌구석에 숨어 있는 특화 된 마을이었다. 수십 군데 정육점 식당 중에서 하필이면 그 곳에 들어갔고, 임실에 있는 모텔에서 우리를 데리러 왔다. 새벽 등산은 차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새벽부터 한탕 이라도 더 뛸 생각이 있는 주인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국 사봉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우연이 겹쳐 나의 작은 로망 하나를 실현시켜 준 것을 생각하면, 내가 몸을 던지는 순간 신도 따라 움직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믿게 된다. 아침을 먹고 나왔어도 아직 8시 반밖에 안 되었다. 집에 서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확률이 높다. 방금 국사봉에서 운해를 보며 감탄하고 온 참이라, 산기슭에 조금 남아 있는 안개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한 발만 나가면 감흥에 감 흥이 꼬리를 물고, 꼭꼭 눌러 담은 고봉밥처럼 꽉 찬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집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내 삶에 대한 직 무유기이다(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