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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 딸이 슈퍼 갑, 과일만 먹어도

by essay6653 2025. 3. 16.

기차여행

 

기차여행 - 무슨 타이타닉이라고

 

시간이 좀 흘렀지만 간간이 언급한 물가만 보아도 베트 남 여행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 물가 가 싼 데서 더 절약하는 사람이 우리 따님이다. ^ ^ 베트남에는 특이하게 침대버스가 있어서 이동시간과 숙 박비를 절약할 수 있는데 우리 같은 배낭여행자에게 딱 좋 다. 버스에 3줄씩 2층으로 침대가 놓여 있다. 앞사람의 등이 올라가고 거기로 내 발을 뻗을 수 있는 구조라 꽤 많은 침대 가 놓여 있는 데다 1층 통로에는 좌석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 이 담요를 깔고 누워 있다. 뭐랄까, 여행체험을 넘어 삶의 끝을 엿보는 기분이었다. 물론 손 빠르고 생각 깊은 따님은 2층 좌석을 구했다. 휴 게소에 들르려고 잠깐 나갈 때면 1층으로 내려가 슬쩍 몸을 비켜주는 사람들을 헤쳐서 지날 때 절로 한숨이 나왔는데, 산다는 것의 절박함이랄지 극한상황을 느껴본 것이다. 그럼 에도 눈을 붙이다 잠깐 깼을 때, 실내도 깜깜하고 바깥도 칠 흑같이 어두운데 수많은 사람이 운전자와 보조운전자 두 사 람을 믿고 자고 있는 광경은 묘한 감동이었다. 2016년 하노 이에서 사파 포함 두 번 타보았는데 그때만 해도 50대였고, 살면서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모두 추억이 된 광경이다. 거기에 비하면 닌빈에서 다낭까지 15시간 야간열차는 영 화에서나 보던 이색 문화 체험이었다. 양쪽 벽에 이층침대가 붙어 있어 한 공간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 이 들어올까 하는 것이 제일 큰 걱정었다. 다행히 남아공에 서 온 커플이라 걱정이 일순에 해결되었다. 남자는 순하고 여자는 발랄하여 아주 편안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접 한 영어 속담 “용기 있는 자가 미녀를 얻는다The brave get the beauty”라는 말이 떠올라 말을 붙였을 때 남자가 척하니 받아 주어서 신기했다. 작은 일이지만 순간적으로 업되는 기분, 흠흠. 이런 게 대화의 맛이겠구먼. 여자를 바라보며 “You are so beautiful!” 하고는 남자를 바라보며 “You must be”까지 했을 때 남자가 “brave”라고 받아친 것이다. 그 기차에는 타이타닉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엄격한 공 간 분리가 되어 있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는 서툴지만 문화의 속살을 느끼고 싶어하는 내게 커다란 감상을 안겨 주었다. 우리가 탄 4인용 침대칸을 지나니 복도부터 허름해 지는 6인용 침대칸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자 칸을 지나니, 딱딱한 나무의자 칸이 나왔다.  나무의자 칸의 창문은 철망으로 되어 있어 무임승차를 막고 있고, 천 장에 닥지닥지 붙은 선풍기가 에어컨이 없음을 알려준다. 나무의자 칸에서 남루한 일가족이 옥수수를 먹고 있고, 어 린아이는 의자 밑바닥에서 자고 있는데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능가하는 페이소스가 느껴져 순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열망에 가슴이 떨렸다. 4인용 침대칸이 3만 원 정도 (2016년).

 

여행 오면 딸이 슈퍼 갑

 

딸이 오토바이를 빌렸다. 1년 반 만의 오토바이 운전인 데도 능숙하게 복잡한 도로를 뚫고 나가는 것을 보니 그저 놀랍다. 알다시피 베트남의 오토바이 행렬은 경이로울 지경 이기 때문이다. 하노이 같은 대도시는 어땠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나짱이나 달랏 같은 도시에는 신호등이라는 게 없다. 남녀노소가 몰고 다니는 오토바이와 차량이 한데 얽 혀 흘러가는데, 특히 오토바이 행렬은 게임 화면에서 난무 하는 병사들 같고,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비 같다. 그렇게 많고, 빠르고, 어디로 튈지 방향을 알 수 없다. 나는 오토바이 행렬을 볼 때마다 게릴라 전법으로 첨단 무기를 무력화시켰다는 베트콩이 떠오른다. 혼잡한 로터리 라도 돌라치면 딸이 바싹 긴장하는 것이 뒤에서도 느껴진 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육중한 덩치가 흔들리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잡고 앉아 상체를 숙여서 조금이라도 저항을 줄 여주는 일밖에 없다. 나는 아예 방향 감각 없고 계산발 안서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조금만 나아진 티가 보 여도 “명똑띠”나 “아이고, 우리 애기 그래쩌요”를 연발하며 내 엉덩이를 툭툭 치는 딸을 보노라면 인생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음이 실감난다. 나를 아이 다루듯이 하는 딸을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고, 이만큼 살아온 것이 장하기만 하다. 딸이 어렸을 때 내가 엄 청 거칠고 독단적인 때도 많았다고 한다. 딸이 아는 사람의 성격을 묘사하며 “젊었을 때 엄마 같아”라고 한 적도 있다. 어느 여고에 지망할지 최종결정을 하려고 딸이 전화를 걸었 을 때, 내가 바쁘다며 “니 맘대로 해”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고 한다. 짜증은 또 얼마나 잦았을 것인가. 자칫했으면 나의 조심성 없는 언행이 딸에게 치명적인 응어리로 남기도 했을 텐데 이만큼 소통하는 모녀로 나이 들고 있음이 고마울 뿐 이다.

 

달랏에서는 과일만 먹어도 남는 장사

 

호박 아니다. 제철인지 달랏 시장에 하도 많이 쌓여 있어 서 호박인가 했는데 아보카도.전에 일부러사서 먹어보았을 때 느끼하고 밍밍해서 별 인상을 받지 못했다면, 여기에서는 느끼한 건 그대로인데 고소하다. 패션프루츠와 같이 먹으면 느끼함을 잡아주는 새콤달콤함에 궁합이 그만이다. 패션프 루츠는 새콤달콤 상큼한 맛이 비타민C의 홍보대사 같은 맛. 그대로 잘라놓기만 해도 너무 예뻐서 언제고 핑거 푸드로 미 니 파티를할 때 곁들이고 싶은 비주얼이다. 딸 말이 요즘 국 내에도 흔하다는데 나는 베트남에서 처음 먹어보았다. 비주얼로 따지면 용과(드래곤프루트)도 빼놓을 수 없다. 겉모습도 요란하지만 잘라놓은 단면도 인상적으로, 흰색이 나 빨간색 바탕에 점점이 박힌 무늬가 예뻐서 플레이팅 에도움이 된다.워낙 담백한 맛이라다이어트에 좋을 듯. 악명 높은 두리안. 마트에서는 꽤 비싸고 노점에서는 킬 로그램에 3000원 정도. 물고구마를 잔뜩 으깨서 두 배의 치 즈를 섞고 ‘발꼬랑내’를 흡입하면 비슷한 맛이 되려나. ㅋㅋ 과일 먹고 콜라로 입가심해야 할 맛. 부드럽고 열량도 높아 보여 이유식 하면 좋겠다. 두리안과 비슷한데 껍질이 삐죽삐 죽 튀어나오지 않고 매끄러운 것이 잭프루츠. 두리안도 그렇 지만 잭프루츠도 과육에서는 나올 수 없는 식감을 지녔다. 먹 을 수 있게 만든, 극도로 부드러운 플라스틱의 식감에 고소한 치즈 맛을 곁들여서 씹는 맛이 좋다. 앞니로 사그작 사그작 갉아먹으면 내가 동화 속 생쥐가 된 것처럼 재미있다. 슈가애플. 못난이 쿠키 같은 비주얼로 두툼한 껍질을 깎 134 즉흥여행이 더 좋은 이유 135 아내면, 이것 또한 형용할 수 없는 맛을 선사한다. 맛을 표 현하기 위해 천천히 세 개를 먹어본 결과, 퍼석거리는 풋사 과에 설탕을 버무려놓은 맛이라는 결론.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망고스틴하고도 비슷한 느낌인데, 강하게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아련한 맛이라 금방 먹고도 잊어버릴 판이 다. 망고는 기본, 이름이 정다운 구아바, 이국의 느낌이 물 씬 풍기는 타마린드…. 여기에 내가 접하지 못한 과일까지 포함하면 달랏에 과일만 먹으러 가도 되지 않을지? 달랏은 해발 1400~1500미터에 위치한 고원 도시이다. 연간 18~24도의 쾌적한 기온을 유지하며 수려한 산간 풍경 을 지녀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휴양지로 개발되었다고 한 다. 과연 완벽한 코발트블루의 하늘을 이고 있는 서구풍의 집들은 어디 유럽 못지않게 아름답다. 35도를 육박하는 다른 도시에서 넘어왔으므로 우리에겐 너무 쾌적한 날씨였다. 해가 쨍하고 나오면 따끈하지만 바 람이라도 불면 가슴속까지 시원하다. 그런 날씨에 놀랍게도 각종 털옷을 입고 있는 현지인이 꽤 많다. 털모자를 쓰고 포 즈를 취하는 현지 관광객도 많다. 달랏보다 훨씬 더운 지방 에서 놀러온 사람들은 이만한 서늘함도 춥게 느끼고 심지어 신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추리해본다. 털모자가 대단한 체험이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하게 사진을 찍고 있는 청소년 무리라니! 최저 온도가 18도 정도라면 우리 기준으로는 아 예 겨울옷이 필요하지 않을 텐데 오버코트로 무장한 이들을 보니, 체감 온도조차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지극히 상대 적이라는 게 놀라웠다. 각자의 경험과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는 것 은 내가 굳이 껴안고 살아야 할 것이 별로 없다는 관점에서 자유로움을 준다. 나는 우리나라의 출세지상주의나 금권만 능주의가 늘 안타깝고 염려스러운데 그런 가치관이 결코 절 대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다른 사고방식, 다른 라이프스타 일은 언제나 가능한 거고, 그걸 강렬하게 집약해서 보여주 는 것이 여행이다. 이렇게 과일로 시작해서 기온으로 넘어 갔다가 삶의 방식으로까지 감각의 지평을 확장해주기에 나 는 여행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