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각별한 사이
어느 날 샤워하고 나오는 딸의 목이 길어 보여서 “넌 나 안 닮아서 목이 길어”라고 말했더니 딸이 이런다. “엄마가 목 아껴서 나 줬잖아.” 그렇다. 모녀란 목도 아껴서 줄 수 있는 사이이다. 나는 애면글면 가족에 목매는 사람을 갑갑해하는 축이지만 모녀 가 이생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로 각별한 인연이라고 알고 는 있다. 아들이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든든한 울타리라면, 딸은 샴쌍둥이처럼 한데 붙어 있는, 영혼의 지근거리에 있는 개체이다. 딸과 나는 성격이 생판 다른데도 그렇다. 내가 즉 흥적이고 단순하다면, 딸은 인생을 한 번 살아본 사람처럼 내가 한 가지를 볼 때 서너 가지를 보는 신통력을 지녔다. 그러니 생각이 얼마나 많고 걱정은 얼마나 많을 것이며 경우의 수마다 대비하는 준비성은 또 얼마나 발달했을 것인가. 내가 지금보다 훨씬 다혈질이었던 초보 엄마 시절에 우격다짐이 심했다고 한다. 나는 시집살이하랴 학원 운영하랴 바쁘고 피곤했을 뿐인데 그 여파가 딸의 성장환경이 되고 성격 형성에도 변수가 될 줄은 몰랐다. 이제 세월이 한 바퀴 굴러 우리 관계는 역전되었다. 성격은 급하지만 예의를 중시하는 내가 가장 함부로 대한 사람이 우리 엄마라는 것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난다. 잘할 땐 잘해드리지만 수틀리면 작은 일로 한없이 치사하게 변덕을 부린 일이 떠올라 엄마에게 죄송하고, 이제 내 차례라는 생각에 정신을 단단히 차리게 된다. 여행으로 뒤바뀐 모녀의 권력관계 엄마 노릇을 배운 적이 없는 초보 엄마가 딸을 키운 것이 모녀 사이의 1라운드라면, 숨 가쁘게 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버벅대는 나를 가르치느라 여념이 없는 딸이 주도하는 현재 는 3라운드가 되려나.
2. 여행이 있다
그사이에 여행이 있다. 딸이 스무 살이 되던 해 시작한 모녀의 여행은 10년간 10 번의 해외여행을 하다 코로나로 멈추었다. 내가 어디 가고 싶다고 제안하고 딸이 동의하면 딸이 폭풍검색을 하며 여행 이 시작되었는데, 2008년 앙코르와트의 위엄에 반했던 첫 여행 이후 2013년 이탈리아와 몰타, 크로아티아, 오스트리 아, 보스니아 등을 45일간 둘러보았고, 2014년 호기롭게 3 개월이나 영국과 아일랜드, 독일, 발트 3국, 폴란드, 슬로바 키아, 헝가리, 불가리아 등을 둘러봤다. 그 밖에 튀르키예와 베트남에 서너 번씩 갔다. 태국에도 두 번 갔다. 나는 원래 약삭빠른 데가 없는데 여행지에서는 더욱 어리바리해서 지도 못 보고, 환율 계산 귀찮아하고, 순발력이 부족하니 실수 연발이라 여행지에서 딸은 새로운 권력자로 등극했다. “엄마, 나는 치사할 정도로 돈 계산이 빨라요”라 던 딸의 경제 감각은 여행지에서 빛을 발했다. 가성비 좋은 숙소나 식당을 찾는 데 쾌감을 느끼니 날이 갈수록 훈련을 거듭하여 딸의 선택은 백전백승, 거의 동물적인 감각에 이르렀다. 그것은 딸이 자기가 잘하는 것을 발견하여 주도성을 확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엄마를 리드하는 즐거움도 있었으리라. 딸은 길눈 어두운 나를 고객처럼 챙겨주었고, 나는 ‘1인 여행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톡톡히 누렸다. 어린아이처럼 딸을 따라다니고 돌봄을 받는 대신 여행 경비는 거의 내가 냈으니, 우리는 환상의 콤비였다. 나는 새로운 풍경과 문화에 심취할 줄만 알았지, 이동 경로와 온갖 탈것과 숙소에 대한 검색과 예약같이 번거로운 일은 모조리 딸이 했다. 내가 책에서 보고 카파도키아, 베네치아에 꽂혀 가고 싶어 하면 딸은 온갖 수고를 무릅쓰고 나를 그곳에 데려다 놓았다. 우리 둘 다 시간이 자유로웠으므로 45일, 3개월 여행도 가능했다. 나는 글쓰기 수업을 하고 딸은 알바를 하며 여행을 일 순위로 살았다. 다른 데 덜 쓰고 저축도 안 하고 여행에 올인한 셈인데, 배낭여행인 데다 딸의 검색 능력이 갈 수 록 향상되어 10년을 다 합쳐도 몇천만 원 정도 경비라서 저축 효과보다는 경험과 추억에서 오는 영양가가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선택하기를 백번 잘했다. 여행지의 저녁이면 딸은 금전출납부를 쓰고, 나는 여행 일기를 썼다. 나는 여행하며 글 쓰는 작가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메모를 잘하는 편이다. 그때 쓴 글을 읽어보면 그립고 애틋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이름만으로도 찬란한 런던, 비엔나, 토스카나였든 우리보다 싼 물가 덕분에 풍족하게 지낸 동남아였든 베짱이 기질에 낭만파인 나는 여행이라면 그저 좋았다.
3. 지나갔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딸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위하여 이제 딸과의 여행을 책으로 묶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나갔기 때문이다. 딸의 20대와 나의 50대를 관통 한 여행은 모녀라는 인연으로 만난 우리의 화양연화였다. 우리 모녀가 가장 행복한 균형을 이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제 딸은 나와 노는 것이 아니라 ‘놀아주는’ 것처럼 군다. 나는 4년 전에 귀촌을 했는데 운전면허를 반납해서 도서관과 치과를 다니는 데도 딸의 차를 얻어 타야 하니 딸을 너무 귀찮게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딸에게 의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제 엄마와 딸 관계의 3라운드에 직면하여, 적극적으로 변화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가장 행복했던 2라운드를 정리 하고자 한다. 여행에 대한 만족감이 지대했던 만큼 딸이 할 노릇을 다했다는 생각까지 든다. 딸들이 엄마에 대해 갖는 부채감을 얘기하는 거다. 그야말로 딸은 나에게 빚이 없고, 나도 그렇다. 주변에서 성인이 된 딸과의 관계 정립에 애를 먹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무리 없이 새로운 시기로 진입할 수 있었다. 엄마는 자식, 특히 딸과의 분리가 어려워 언제까지나 어릴 때의 딸로만 여기고 간섭을 일삼기도 하는데 그러면 딸이 힘들어한다. 엄마 자신이 나이 들어가며 심리적 신체적 변화에 놀라 딸에게 집착하기도 하는데 그럴 수 록 딸이 숨 막혀한다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인생이 길어져서 엄마와 딸이 같이 나이 들어가는 시기 가 곧 도래한다. 성인이 된 딸을 어릴 때와 똑같이 돌보는 것 말고 새로운 관계 맺기가 필요하다. 딸은 엄마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답게 살고자 할 뿐이니 맘껏 살아보라 고 숨통을 틔워주고 엄마는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데 애써야 하리라. 어떤 관계든 사랑이 점점 넓어지지 않으면 관계가 고착되기 쉽다고 한다. 딸은 나의 분신이고 한 몸 같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기억만으로 유지되기에는 인생의 단계마다 변화가 극심하고 시대의 변화는 더 빠르다. 성인이 된 딸이 스스로 결정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발달 단계이니 그러라고 내버려 두고, 엄마는 차라리 인생과 시대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 낫다. 그러다가 딸이 조언을 요청해 올 때 시의적절한 대화상대가 되어 주는 것이 이 시대의 사랑법이 아닐지. 여행은 호기심을 되살려주고 대화거리도 풍성하게 해 주고, 외국어나 문화에 대한 탐구심까지 불러일 으켜 주니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으면 최고이리라. 우리의 3라운드가 2라운드만큼 재미있기를 바란다면 나는 훨씬 부지런해져야 할 것이다. 놀러 다닌 이야기를 풀어놓으니 얼핏 자랑같이 들릴 수도 있지만, 자랑이 아니라 기록이다. 너무 소중해서 책 속에 꽁꽁 담아 두고 싶은 기록. 나에게는 직접경험이지만 그렇게 찬란한 시간을 누렸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데 비해, 누군가 내 글을 빌미로 성인이 된 딸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그 이에게 오히려 생생한 현실이 될 수 있을 테니 꿈과 현실이 뒤섞이는 것도 여행기에 딱 맞는다 하겠다. 하도 나와 다르고 내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딸이 감탄스러워서 물은 적이 있다. “도대체 너 같은 애가 왜 내 자궁을 필요로 했을까?” “글쎄… 넓어서?” 딸과 만나게 된 것이 나의 듬직한 덩치 덕분이었다니 앞으로도 체격을 잘 유지해서 딸이 몇 살이 되든 믿는 구석이 되어야겠다.